이태원 치안계획 수립 실무자 “이임재 경찰기동대 투입 지시 없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로 구속 기소된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 서장(54‧구속)이 사고의 위험성을 인지했지만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용산서 관계자는 이 전 서장의 허위공문서 작성 지시도 폭로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허위공문서작성‧행사 등 혐의를 받는 이 전 서장을 비롯해 용산서 관계자 5명에 대한 1차 공판을 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정현욱 용산서 112상황실 운영지원팀장은 검찰 주신문과 반대신문 일부를 받았다. 정 팀장은 이태원 핼러윈 종합치안 계획을 수립한 실무자이며 이태원 참사 이후 용산서 내부 사후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정 팀장은 이태원 참사 발생 2주 전(지난해 10월15일) 진행된 이태원 지구촌 행사에 참여한 이 전 서장을 수행했다. 정 팀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녹사평역에서부터 이태원 파출소까지 걸어가며 인파 혼잡 상황을 목격했고 정 팀장에게 “사람이 붐벼서 교통이 마비되는데 왜 교통통제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후 열린 용산서 회의에서 112상황실에 이태원 핼러윈 축제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정 팀장은 기능별 대책을 수집했고 이태원 핼러윈 종합치안 계획을 작성했다. 정 팀장은 “혼잡 경비 등 인파 안전 관리 계획이 빠졌지만 이 전 서장은 별도 추가 지시를 하지 않았다”며 “용산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태원에 인파가 밀집했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경찰 기동대 지원 요청에 대해 “(이 전 서장의 지시는) 없었다”며 “이태원 지구촌 축제 결과를 (서울경찰청에) 보고하면서 최소한 교통기동대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회신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서울경찰청에 경찰기동대 투입을 요청했다는 이 전 서장의 주장과 상반된 증언이다. 다만 관용차에서 무전 내용을 듣지 못했다는 이 전 실장의 주장에 대해선 “당시 무전 상황이 좋지 못했다. 관용차 내 무전이 원활했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정 팀장은 이 전 서장이 경찰기동대 투입과 관련해 허위공문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참사 다음 날 정 팀장은 용산서장실로 들어가 사후 추진경과 보고서를 보고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용산서가 교통기동대를 요청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는 “이 전 서장이 누군가와의 통화 이후 경찰기동대로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차마 경찰기동대라 적을 수 없어 ‘기동대’라고 표현을 바꿨다”며 “이후 경찰청의 확인 요청 전화가 온 사실을 보고했고 이 전 서장은 수정된 보고서에 엑스(x)자를 치면서 교통기동대로 수정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서장의 이태원 참사 현장 도착 시각에 관한 허위 기록 경위에 대한 진술도 나왔다. 참사 직후 작성한 조치상황 1보에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오후 10시 17분 현장에 도착했다고 적시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이 실제 도착한 시각은 오후 11시 5분이다. 당시 현장에서 인파와 차량 통제를 맡은 정 팀장은 “이 전 서장의 도착시각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송병주 전 용산서 112 상황실장에게 ‘세월호 사건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기재하면 허위다’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조치상황 2보에는 시간대별 행적을 적시되지 않았다. 허위 공문서를 직접 작성한 용산서 생활안전계 서무에 대해서는 “서무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현장 통제하는 위치에 있어야 시간대별 조치상황을 적을 수 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재판에 앞서 이날 오후 1시 서부지법 앞에서 책임자 처벌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사 희생자 고(故) 오지민씨 아버지 오일석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은 “국민 안전 볼모로 자신 안위와 이익 챙기는 자들이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음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장은 이날 열린 이태원 참사 책임자의 첫 공판에 대해 “경찰이 당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태도를 보여 더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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