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병원 시대 열고 ‘세계 바이오헬스케어’ 중심지 도약
작년 뉴스위크 선정 ‘세계 100대 병원’
기업 45곳 헬스케어혁신파크 입주
정부 AI기반 의료 SW 개발도 주관
오는 10일 개원 20주년을 맞는 분당서울대병원의 비약적 성장이 주목받고 있다. 2003년 5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디지털병원’을 표방하고 첫 진료를 시작한 이래 20년간 발전을 거듭해 국내 대표 의료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세계 의료산업을 선도하는 ‘바이오헬스케어 중심지’로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다.
병원이 문을 연 2003년 이전만 하더라도 대학병원 진료시스템은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환자들은 X선영상과 처방전, 각종 서류 등을 들고 넓은 병원을 오가야 했고, 여러 진료과를 들러야 할 경우 자신의 차트가 다른 과로 전달되지 않으면 진료를 볼 수도 없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런 의료 환경을 개선해 문턱을 낮추고 보다 환자 친화적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디지털화에 초점을 맞췄다. 한 시스템 내에서 진료, 영상판독, 원무 등이 모두 해결되는 자체 의료정보체계 ‘베스트케어(BEST Care)’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미국 외 지역에서 세계적 의료 IT인증(HIMSS EMRAM Stage7)을 받았으며 미국 일본에 수출도 됐다.
처음부터 분당서울대병원의 성공을 내다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의 분원이라는 한계가 나타날 것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인재 확보, 연구를 통한 의료 질 향상, 지속적인 병원 혁신, 선제적 의료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젊고 혁신적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개원 당시 하루 평균 외래 환자 1335명, 입원 449명에서 현재는 각각 7000여명, 1200여명으로 5.2배, 2.7배 증가했다. 병상 수는 484병상에서 1335병상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세계 병원 순위를 정하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2022년 세계100대 병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적 성장뿐 아니라 의료의 질적 수준도 뒤따랐다. 암·뇌신경 분야를 주력으로 특히 복강경, 흉강경, 로봇을 이용한 최소침습(절개)수술 분야를 개척했다. 다수의 국내외 ‘최초’ 기록을 썼다. 뇌혈관 분야를 개척한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꽈리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기형적 뇌혈관을 정상 혈관 손상 없이 치료하는 세계 최초 ‘멀티플 카테터 코일색전술’로 뇌혈관 내 수술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고난도 ‘미세뇌혈관문합술’을 배우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사들의 방문이 매년 줄을 잇고 있다. 연간 3500건의 뇌혈관조영검사, 1000건 이상의 뇌혈관 시술이 이뤄진다. 치료 성적 또한 뛰어나 뇌혈관 시술 후 합병증 발생률은 0.6%에 그친다. 2013년에는 암·뇌신경병원 신관을 개원해 진료의 규모가 대폭 성장했다.
미래 의료를 선도하겠다는 분당서울대병원의 지향점은 2016년 세운 ‘헬스케어혁신파크’를 통해 새롭게 설정됐다. 이는 산학연병(산업-대학-연구시설-병원)이 한 곳에 모여 의학 연구를 하는 바이오메디컬클러스터다. 병원 관계자는 8일 “이제는 바이오·의료기기·의료ICT(정보통신기술) 등 헬스케어 융복합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점에 착안해 병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업과 제약사, 연구소가 모여 연구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며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 의사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이곳에선 처음부터 의사와 협업하는 환경이 제공되고 아이디어 개발부터 전임상(동물실험) 및 임상 연구, 제품화까지 전주기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백신으로 급부상한 미국의 모더나도 하버드대병원을 중심으로 한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헬스케어혁신파크에는 현재 바이오·의약품·의료기기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 45개가 입주해 있다. 그 가운데 6곳이 코스닥에 상장했고 1개사는 미국 나스닥 진출을 앞두고 있다.
병원은 2019년 혁신파크 내에 실험동물 연구가 가능한 첨단 전임상실험센터인 ‘지석영의생명연구소’도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건물과 인근 헬스케어혁신파크 부지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산의 밑을 뚫어 쉽게 오갈 수 있는 터널 ‘워킹 갤러리’를 개통함으로써 ‘국내 최초 병원 주도’라는 타이틀을 가진 혁신파크의 장점인 의료진과 연구진의 유기적 연계를 실현할 수 있게 했다”고 전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 밖에 빅데이터센터, 헬스케어ICT연구센터, 의료인공지능(AI)센터, 유전체 기반 정밀의료센터 등을 설립하고 차세대 의학의 핵심 분야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부 차원의 AI기반 의료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인 ‘닥터앤서(Dr.Answer)2.0’의 주관 연구기관을 맡고 있다. 2024년말까지 위암·우울증 등 12개 질환 대상으로 개인 특성에 맞춰 질병 예측과 진단, 치료, 예후 관리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AI소프트웨어 24개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수도권 감염병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감염병전문병원(348병상)’도 2030년 완공 목표로 추진 중이다. 송정한(사진) 병원장은 “4차산업혁명, 코로나19 대유행 등으로 각 분야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며 미래 의학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를 선도하기 위해 헬스케어혁신파크 기능을 더욱 고도화하고 세계 의료산업을 앞서 이끄는 바이오헬스케어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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