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쓰레기 줍다가 '번뜩'… 섬마을 선생님의 멋진 변신
[조종안 기자]
▲ 전북 군산시 옥도면 비응도동 해변(마파지길)에서 쓰레기 줍는 김덕신 작가(2022년 8월 촬영) |
ⓒ 조종안 |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와 조약돌을 줍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김덕신(50대) 환경작가의 탄식이다. 지난 3일 기자와 인터뷰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페트병과 플라스틱, 유리조각과 덤불들이 해변에 넘쳐나고 있다"며 "환경문제에 우리 모두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가 업사이클링(버려진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을 새롭게 활용하는 일 - 편집자 말) 깃대를 높이 세운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무책임한 소비문화와 이기주의가 불러온 폐단을 미약하나마 해결해 보겠다며 나선 것.
주위에서는 차라리 환경단체를 만들어 보라고 권한단다. 하지만 그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거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작품에 담긴 메시지와 경각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예술인 입장에서 작품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당장은 예쁜 그림을 많이 그려서 부를 축적할 수도 있겠지만, 명예와 미래 세계를 선택했어요. 내 작품으로 인해 누군가가 감동하고,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고 또 플라스틱 제로의 삶을 추구해서 그게 후세로 이어진다면 환경·자연보호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자그마한 것부터 실천해 보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김 작가의 업사이클 작품들은 직접 해변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폐플라스틱과 폐비닐 등으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다. 고군산군도(비안도) 해변 몽돌과 모래를 이용한 '거미', '부엉이 부부', '화병속의 꽃' 등 섬마을 아이들과 합작한 작품도 많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의미가 담겨 있어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는 작품에 필요한 재료를 주로 바닷가에서 찾는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바닷가로 나간다. 그렇게 주워 온 덤불과 버려진 페트병을 변형시켜 다양한 작품을 구상한다. '모란', '연꽃', '책가도' 등 우리의 전통 민화를 재해석한 작품도 만든다.
▲ 해양쓰레기에 대해 설명하는 김덕신 작가 |
ⓒ 조종안 |
김 작가는 대학 졸업하고 방과 후 프로그램 미술 강사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예술 강사로 활동하다가 2010년 전북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초등학교 공예수업 강사로 배치됐다. 매주 수업을 나가던 그는 우연히 바닷가에서 겪은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해양쓰레기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며 환경작가로 변신하게 된다.
그의 작업실은 부잣집 안방에 놓여 있던 자개장부터 폐비닐까지 쓰레기와 폐품으로 가득하다. 김 작가는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리는 쓰레기, 남들에게 값어치 없는 물건을 값어치 있게 재탄생 시키는 게 제가 할 일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다. 쓸모없는 옛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에 생명력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다.
▲ 폐품으로 가득한 김덕신 환경작가 작업실(소소제) 모습 |
ⓒ 조종안 |
그의 작업실 한쪽에는 전라북도 부안의 채석강, 군산시 최남단 섬 비안도, 새만금 방조제 시작점에 있는 비응도(마파지길 해변) 등의 해변에서 주워 온 유리 조각들이 다양한 형태의 장식품으로 변신해 있었다. 김 작가는 그중 폐기된 화장품 그릇과 향수병, 액세서리 등은 <여인의 향기>에 전시될 작품 소재라고 귀띔했다.
김 작가는 과거 전시회 타이틀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또 다른 공해물질이 배출되는 것을 보며 고민했던 경험도 들려줬다.
"<섬섬옥수>는 여인의 부드러운 손을 의미하는데, 의역해서 제목을 지었죠. 두 섬(島)과 맑은 물을 기대하는 아이들의 꿈같은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모두 입체작품이었습니다. 플라스틱병을 오리고, 구부리고, 색칠하면서 만들었는데 유독가스가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고민하다가 재료 본질 그대로 활용하기로 마음 정하고 <부스럭 부스럭>을 기획하게 됐죠.
부스럭 부스럭은 폐비닐이 부스럭거리는 의성어죠. 작품에는 물감이 한 방울도 안 들어갔고, 폐비닐 그대로 활용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폐비닐로는 디테일한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비닐의 화원>을 기획하게 됐고, 꽃도 모두 폐비닐로 만들었죠.
참 그 전에 <유혹>이 있었죠. 왜 유혹이라고 했냐면, 낚시꾼들이 버린 '루어'를 활용한 작품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낚시꾼들이 가짜미끼(루어)를 던져 물고기를 낚잖아요. 인간의 미끼는 플라스틱이죠. 가볍고 질긴데다 편리성에 넘어가 플라스틱 대란 속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타이틀을 <유혹>으로 정했습니다. 이때는 물감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쓰레기도 선물상자처럼 포장했습니다."
바닷물이 스며든 쓰레기를 소각하거나 매립하면 공해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해변의 나뭇가지도 작업실 한쪽에 쌓아놓았다"며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재활용과 업사이클 작품 활동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해변에서 주워온 유리조각을 재료로 만든 화병의 유리꽃 |
ⓒ 조종안 |
▲ 해변에서 주워온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책가도. 모란꽃, 필통 등은 폐한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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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의 몽돌과 모래를 재료로 만든 거미와 거미줄(섬마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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