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어느새 5위 제주, 정말 변할까 싶었던 남기일 감독이 달라졌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제주유나이티드의 남기일 감독은 지난 시즌 말미 재계약을 통해 올해 프로 감독 10년차를 맞았다. 재계약 과정에서 의구심이 컸다. 지난해 팀의 행보는 들쭉날쭉 했고,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일부 선수와의 갈등도 화제였다. 수원FC로 이적한 윤빛가람은 시즌 전 기자회견에서 남기일 감독과의 불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2023시즌을 준비하는 남기일 감독은 변화를 키워드로 삼았다. 대대적으로 교체한 코칭스태프 같은 인적 쇄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팀 운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총체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기존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강하게 끌고가는 수직적 리더가 아니라, 선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수평적 리더로 변신하겠다고 약속했다. 6명의 베테랑으로 구성된 대규모 주장단과는 필요할 경우 선수 영입 정보까지 공유하겠다고 했다. 팀을 위한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면 감독의 권한이나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가 심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감독의 본성과 관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를 강조하며 위기 상황이 오면 결국 남기일 감독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겠냐는 시선이 많았다. 그리고 그 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왔다.
제주는 개막 후 초반 5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다. 2무승부 후 인천, 서울, 울산에 3연패. 3연패 후 순위는 K리그1 최하위였다. 남기일 감독이 약속한 변화가 알멩이가 없다는 지적도, 이제는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상도 다 일리가 있었다. 그때 남기일 감독의 반응은 반대였다. "선수들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나를 더 낮추려고 한다. 선수들의 부담은 덜고 자신감은 살려주고 싶다"고 얘기했다.
5경기 무승 후 제주를 기다린 것은 지옥의 원정 3연전이었다. 강원, 창원시청(FA컵), 수원을 엿새 사이에 상대해야 했다. 춘천에서 창원으로, 다시 수원으로 가는 이동만으로도 벅찼다. 게다가 시즌 초반 주장 최영준을 시작으로 임채민, 조나탄 링, 진성욱, 연제운, 이지솔, 전성진, 이기혁 등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며 활용할 수 있는 선수 숫자 자체가 20명 미만이 됐다. 안현범, 이창민, 정운도 부상으로 강원 원정부터 함께 하지 못하고 그 이후 경기부터 차례로 합류하는 상황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주는 반등을 시작했다. 강원 원정에서 서진수의 골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고, 이어진 창원시청과의 FA컵 3라운드에선 구자철의 극장골로 2-1로 이겼다. 이어진 수원 원정에서는 난타전 끝에 3-2 역전승을 거뒀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을 듣던 두 외국인 유리 조나탄과 헤이스가 각각 2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3연승을 이끌었다.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 패하며 다시 침체에 빠지는 듯 했지만 이어진 광주, 대전과의 원정 2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챙겼다. 특히 3-0 완승을 거둔 대전전은 올 시즌 제주가 보여준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제주가 완전히 경기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숙제는 홈 승리였다. 10라운드까지 FA컵 포함 원정에서 5승 1무 1패를 기록했지만, 홈에서는 1무 3패를 기록 중이었다. 홈에서 포항과 만난 11라운드에서 제주는 김봉수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두고 드디어 홈 팬들 앞에서 승점 3점을 챙겼다.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최악의 출발이었지만 11라운드를 마치며 리그를 한바퀴 돈 결과 제주는 5승 2무 4패, 승점 17점으로 5위를 기록 중이다. 2위 서울과는 승점 3점 차다. 상위권 턱밑까지 올라왔다. 남기일 감독은 1라운드 로빈을 마친 소감으로 "위기와 기회는 서로 맞닿아 있었다. 우리 선수들이 그걸 증명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서는 힘든 시간을 통해 팀이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선수들이 초반에는 불안해했다. 결과가 안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며 동계 동안 준비한 전술이나 패턴에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했다. 선수단 스스로가 믿음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헤쳐 나오며 오히려 팀으로서 훨씬 발전했다."
남기일 감독은 구자철과 김오규 두 베테랑이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이 컸다고 말했다. 11라운드까지 구자철은 10경기, 김오규는 11경기를 뛰며 크고 작은 부상으로 주장단의 다른 구성원이 빠진 사이에도 팀을 지켰다. 구자철은 고비였던 창원시청과의 FA컵에서 극적인 골을 넣었고, 김오규는 대전 원정에서 약속된 세트피스 플레이로 득점을 올려 대승의 발판을 놨다.
서진수와 김봉수는 팀의 위기에서 더 빛난 젊은 선수들이다. 서진수는 초반 5경기에서 3골로 빈공에 시달리던 제주 공격진의 새 희망이 됐다. 강원, 광주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다. 서진수의 존재감이 커지며 유리 조나탄, 헤이스에 대한 견제가 느슨해지며 다른 공격 루트가 열렸다. 멀티플레이어 김봉수는 3백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며 팀의 구멍을 메웠다. 최근 대전, 제주를 상대로 2경기 연속 골까지 터트리며 팀의 주축으로 확실히 올라섰다.
골키퍼 김동준은 현재 K리그1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다. 매 경기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을 구해냈다. 남기일 감독은 "새로 온 송유걸 코치를 만나며 겨울 동안 훈련량이 늘었다. 몸이 상당히 가벼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다른 플레이 말고 골키퍼의 기본 역할을 100% 해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120%를 해 주고 있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리그에서 1경기도 뛰지 못하지만 백업 골키퍼 김근배의 역할도 중요했다.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이끌며 팀 분위기를 받치는 헌신을 보였다. "팀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베테랑이 그라운드 밖에도 있어 선수단 전체가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남기일 감독이 말한 김근배의 중요성이었다. 김근배는 유일하게 출전한 FA컵 3라운드에서 팀 승리를 견인했다.
남기일 감독의 변화를 위한 인내와 고민도 제주의 반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정조국 수석코치는 "팀이 위기에 있을 때 오히려 감독님이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준 게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주중 경기까지 낀 원정이 주는 체력 부담이 큰 일정에서 감독의 전술적 틀을 강조해 압박을 주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선수들에게 전술적 약속의 가지 수를 줄이고, 개인이 잘 할 수 있는 특성 있는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간 것이 팀을 살렸고 그것이 두 번의 3연승으로 이어졌다.
제주의 고민은 남아 있다. 1승 밖에 거두지 못한 홈에서 승점을 더 확실히 챙겨야 한다. 제주는 다른 구단들과 달리 홈 경기 때 하루 전 전체 합숙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제주는 오후 2시에 홈 경기를 치르는 패턴이 많다 보니 선수들 싸이클이 뒤죽박죽이다. 원정보다 홈에서 선수단의 일관성 있는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남기일 감독은 "어떤 형태로 선수들이 더 편한 상태로 홈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고 말했다.
포항전에서 임채민이 복귀한 제주는 외국인 공격수 링의 복귀도 임박했다. 힘든 상황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이주용을 비롯 부상으로 제주 이적 후 기여도가 적었던 김주원, 안태현 등도 자리를 잡았다. 남기일 감독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승리했지만 분명 내용이 안 좋았던 경기도 있었다. 팀 전체가 지금 같은 흐름으로 더 올라가야 한다. 초반에 놓쳤던 것을 찾아가는 2라운드 로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는 오는 10일 홈에서 인천을 상대로 12라운드를 치른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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