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마음 아파"가 최대 성의? 일 총리 치켜세운 한국 언론
[민주언론시민연합]
▲ 악수하는 한일 정상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5.7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당시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전체를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번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일본 정부의 진일보한 입장 표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는데요.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일본 총리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개인 의견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겨레·경향 "사죄·반성 없다" vs. 조중동·한국·매경·한경 "최대한 성의"
신문사별로 기시다 총리 발언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정부 차원의 반성과 사과 메시지는 내지 않았다" "두루뭉술한 표현" "명확한 사과는 하지 않은 데다 일본 측 배상 참여 부분에서도 진전은 없었다"면서 과거사 문제에서 진전 없는 회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조선일보 <"한국, 미래 위해 마음 열어"…기시다, 징용 해법에 "감명">(5월 8일 김은중 기자)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일보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중앙일보도 <윤 대통령, 기시다 '가슴 아파' 발언에 "진정성 보여줘 감사">(5월 8일 정진우 기자, 이영희 특파원)와 <사설/한·일 셔틀외교 복원, 진정한 미래협력 발걸음 되길>(5월 8일)에서 "강제징용 사실 자체를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던 점과 비교하면 기시다 총리의 이날 발언은 과거사 문제에서 일부 진전된 모습을 보여준 것"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기존보다 한걸음 진전된 입장"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놨습니다. 동아일보 <사설/기시다 "가슴 아파"…'개인적 유감' 넘는 '국민 화해'로 미래 열라>(5월 8일)는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언급이…(지난 3월) 우회적 언급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한 걸음 진전된 유감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매일경제 <사설/한일정상 12년만에 셔틀외교, 더 자주 만나 양국 미래 초석 놓길>(5월 8일) 역시 "(기시다 총리가) 유감을 표명한 것은 과거사 문제에서 진전된 자세"라며 "나름 '성의 있는 호응'을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경제도 <기시다 "많은 분들이 슬픈 일 겪어 마음 아파">(5월 8일 정영효 특파원)에서 일본 외교소식통 발언을 빌려 "'사죄와 반성'을 기대한 한국인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기시다 총리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일보 <일 총리 아닌 개인적 유감 그쳐…'물컵의 절반' 채우기엔 부족했다>(5월 8일 문재연 기자)는 "(기시다 총리 발언이) 3월 회담 당시 두루뭉술하던 것과 비교하면 반걸음 정도 나아갔다"고 평가했습니다.
▲ 공동 기자회견 발언하는 기시다 총리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5.7 |
ⓒ 연합뉴스 |
지난 3월 회담 당시 4월 지방선거를 앞둔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며 일본 정부가 사죄 표명을 하기 어려운 사정을 자세히 전한 동아일보와 한국경제는 이번에도 같은 태도를 견지하며 기시다 총리 발언을 치켜세웠습니다.
동아일보는 <기시다, 징용 관련 "내 생각 솔직하게 말해"... 개인적 유감 표명>(5월 8일 신나리 기자, 이상훈 특파원)에서 "일본 외무성과 자민당은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기시다 총리에게 방한 전...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고 "당초 일본 외무성과 총리관저가 준비한 회의 및 회견 자료에도 이번 발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기시다 총리가 직접 한국 국민들에게 본인 입장을 진솔하게 설명했다는 건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갖고 사죄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5월 8일 사설에서도 "(기시다 총리가) 국내 보수파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소수 파벌 출신의 총리라는 국내 정치적 한계 속에서 개인적 심정 피력 수준에서나마 한국의 선제적 관계 복원 조치에 호응해 직접 화답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셈"이라며 긍정 평가를 이어갔습니다.
한국경제 <기시다 "많은 분들이 슬픈 일 겪어 마음 아파">(5월 8일 정영효 특파원)는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기시다파는 소속 의원이 43명에 불과한 자민당 4대 파벌"로 "최대 파벌인 아베파(97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둔 기시다 총리는 취약한 당내 기반 때문에 정치·외교는 물론 경제정책에서도 아베파를 의식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회담에서) '마음이 아프다'는 기시다 총리의 말은 일본 내 예상을 뒤집은 '깜짝 발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선일보 "일부 시민단체 생존자 회유" 주장, 출처는?
일본 교도통신은 5월 7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관련 소송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 생존자 3명 중 1명이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할 의향을 밝혔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교도통신 보도를 그대로 인용했는데요. 조선일보 <강제징용 생존자 "정부 해법 수용" 처음으로 의사 밝혀>(5월 8일 김은중 기자)는 "일부 시민 단체가 이 생존자와 가족들에게 정부 해법을 수용하지 말라고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출처는 없습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5월 8일)에서 김종배 진행자가 조선일보 보도를 확인해줄 수 있냐고 묻자,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피해자들을 갈라치기 하는 건 전형적인 2015년 위안부 합의 때도 나왔던 정부의 수법"이며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전해졌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태"로 "대단히 유감스럽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김영환 실장의 발언에 비춰볼 때 조선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와 강제동원·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 입장을 제대로 취재하지 않고 일본 교도통신 보도를 그대로 받아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일부 시민단체가 정부 해법을 수용하지 말라고 회유'하고 있다는 출처 불명의 내용까지 전했는데 확인 없는 인용보도라면 부적절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올해 여름 바다로 방류할 예정입니다. 일본 정부가 자국 어업인들의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500억 엔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 어민들은 원전 오염수 방류를 거듭 반대하고 있습니다.
주변국들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독일 슈테피 렘케 환경장관은 "처리수 방류를 환영할 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중국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핵으로 오염된 물을 바다로 방류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내정 문제가 아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정상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습니다.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은 시찰단의 한계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동아일보 <사설/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안전 실질 검증이 관건>(5월 8일)은 "전문가들의 일회성 시찰 정도로 우리 국민의 우려가 해소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시찰이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형식적 조사에 그쳐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 <사설/분명한 과거사 사과 없이 '미래'만 강조한 한-일회담>(5월 8일)은 "방류 여부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자칫 일본 정부의 명분 쌓기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경향신문 <외교전문가 기시다 발언, 본질 회피…시민단체 일 사죄 없이 진행된 회담 규탄>(5월 8일 강은·전지현 기자)도 "기시다 총리의 말을 들어보면, 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시찰만 하고 오는 것으로 읽힌다"며 "자칫 잘못하면 일본의 원자력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는 행위로 시찰단이 오용되고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한국일보 <기시다 "나쁜 영향 줄 방류 없다"…한국 시찰단 23일 후쿠시마 방문>(5월 8일 최동순 기자)도 "IAEA가 주도한 검증 작업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는 데다 검증단이 아닌 '시찰단' 성격이어서, 파견을 통해 얻을 정보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다른 언론은 현장 시찰단 파견의 한계점과 그로 인한 우려는 부분을 짚지 않았습니다. 한일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로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5월 8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첫째도, 둘째도 경제" 올인했지만... 전망은 거듭 후퇴
- "워킹맘이 죄인인가" 어버이날 떠오른 그 사연... 명복을 빕니다
- 한국의 굴욕외교는 이렇게 계속 이어졌다
- '김남국 60억 코인'에 화들짝... '밀린 숙제' 날아든 국회
- 50여년 동안 세 번 바뀐 엄마의 도시락
- 국힘 당사 앞에 선 이태원 유족... 한 유튜버 "북 가라" 모욕도
- 정신질환자가 생각하는 가족은 이렇습니다
- [오마이포토2023] 여의도 국힘 당사앞, 이태원참사 유족 부상자 속출
- "학교도 토양오염 따지는데... 어린이정원은 왜 안 밝히나?"
- 민주, 총선서 '음주운전·다주택 투기' 등은 예외없이 공천 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