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잔 채우기 시작됐다…日기업 참여ㆍ실효적 시찰이 과제

강태화, 정영교 2023. 5. 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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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2년만의 한ㆍ일 셔틀외교를 복원하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을 마련했다. 기시다 총리의 1박2일 답방은 한국 정부가 먼저 물잔의 반을 채운 데 이은 일본 측 몫인 남은 반 잔 채우기의 시작이다.

기시다 총리는 답방 정상회담에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진전된 발언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관계 정상화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선 다음 단계로 작더라도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해졌다.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다음 단계 조치로 실효적인 시찰단 활동과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측 피고 기업의 참여 등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유코 여사와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정상 채널 복원으로 계기 마련


전문가들은 두 정상 간 회담으로 “한ㆍ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프로세스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놨다. 양국 관계는 당분간 복원된 셔틀외교를 통한 '정상 채널'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ㆍ일 양국이 셔틀외교 복원을 통해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관계 회복의 기조를 다졌다는 데 우선적 의미가 있다”며 “특히 기시다 총리가 회견에서 개인적 심경을 언급한 것은 한ㆍ일 양국 강경파들의 입장을 절충해 경색된 상황을 돌파해보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신 전 대사는 이어 “아직 한국의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강제동원 문제 등이 아직 진행 과정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랜 갈등 요인이 단번에 해결되길 바라기보다,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통해 양국이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게 됐다는 점에 일단 의미를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3월 도쿄 회담은 양국 관계 복원을 위한 개문발차(開門發車)의 성격이 강했다”며 “곧장 이어진 이번 서울 회담은 양국 관계가 안정적 궤도에 올라 본격적인 협력 프로세스가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확대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실제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좋은 변화의 흐름을 처음 만들기 힘들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대세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회담이 “새롭게 출발한 한ㆍ일 관계”의 시작점임을 강조했다.


기시다 “과거사, 내게 맡겨달라”


기시다 총리는 방한에 앞서 일본 측 참모들에게 “과거사 문제는 내게 맡겨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과거 강제징용 문제 등과 관련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공원 참배와 오염수 시찰단 수용 의사를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7일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며 묵념하고 있다. 뉴스1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적 발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진정성을 표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라며 “또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상당수가 강제동원 피해자라는 점에서 한국인 희생자 참배 발표는 상당히 높이 평가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잔의 절반을 채웠다’는 한국의 입장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하나씩 하나씩’이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며 “최소한 한 방울씩이라도 일본 역시 ‘남은 빈 잔’을 채워나가겠다는 의미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자민당 내 강경 ‘아베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스스로 당내 반대를 피해 제안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한국을 배려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윤 대통령과 참배하려는 위령비가 본인의 지역구인 히로시마에 있다는 점 등 정치적 역학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日기업 참여ㆍ시찰 실효성이 바로미터”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으로 마련된 관계 개선 계기를 살리려면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일 공동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신 전 대사는 “기시다 총리의 ‘퍼스널 터치’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문제 해결 과정에 일본측 피고 기업의 참여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며 “향후 해당 기업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양국 관계 복원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양 교수도 “일본이 한국 시찰단을 수용하기로 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를 근거로 7월 이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원칙과 계획이 달라진 건 없다”며 “만약 일본이 한국 시찰단을 정해진 절차를 강행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활용하려고 할 경우 어렵게 접점을 찾고 있는 양국 관계가 오히려 더 크게 역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 위원 역시 “한ㆍ일 양국 정부의 관계 개선 의지가 대단히 크다는 점은 충분히 확인됐다”며 “다만 이를 지속적으로 이끌 원동력은 결국 양국 국민의 공감대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현실화하느냐가 중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잔, 계속 채워나가야”

즉 양국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해선 일본 측이 보다 성의 있게 물잔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시다 유코 여사가 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 현충탑 참배에 앞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교수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한 번에 물잔의 절반을 채웠지만, 일본은 한국이 채우고 남은 물잔 절반 가운데 아직 절반도 채우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 앞에서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언급한 것 역시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라며 “본인이 먼저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부담을 진만큼 이번엔 기시다 총리가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는 점을 직접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 전 대사도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보다 진전된 사과를 하느냐는 어쩌면 한국이 하기에 달려 있을 수 있다”며 “일본 정부를 향해 협조를 구하는 방식의 접근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강태화ㆍ정영교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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