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온 가족을 잃은 아버지, 그가 떠난 여정

김성호 2023. 5. 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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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84] <워터 디바이너>

[김성호 기자]

▲ 워터 디바이너 포스터
ⓒ (주)더블앤조이 픽쳐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가족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날이 잔뜩 모인 따스한 달이다. 지구가 한 바퀴 도는 똑같은 하루라지만,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의미를 따라 사는 인간의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다. 어린이날엔 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날엔 부모를 돌아보며 우리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영화엔 수많은 미덕이 있는데, 다른 이의 삶으로부터 나를 돌아보는 것도 그중 하나라 하겠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많은 것이 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 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사랑과 우정, 책임감과 자부심 같은 다양한 가치를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보는 이의 마음 가운데 피워내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어버이날에 맞춰 가족애가 두드러진 영화 한 편을 봐야겠다 마음먹은 건 그래서였다. 여러 영화가 후보에 올랐으나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부자의 정이 두드러진 영화를 골랐다.

한순간에 온 가족 잃은 아버지
 
▲ 워터 디바이너 스틸컷
ⓒ (주)더블앤조이 픽쳐스
 
영화는 <워터 디바이너>, 세계적 배우 러셀 크로우의 감독 데뷔작으로 잘 알려진 2014년 작품이다. 고향인 호주 자본으로 호주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고, 무엇보다 탄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호평을 자아냈다.

이야기는 전 유럽을 휩쓴 1차 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다. 척박한 호주에서 농부로 살아가는 코너(러셀 크로우 분)는 얼마 전 세 아들을 잃었다. 아들 셋이 모두 대영제국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튀르키예 갈리폴리 전투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전장에서 아들이 적어 내려간 일기만이 유품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아들들에게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준 코너는 이 비극이 제 잘못인 것만 같아 가슴이 무너진다.

더 힘든 문제도 있다. 저보다 더 괴로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곁에서 봐야만 하는 것이다. 아내는 참전을 말리지 않은 코너를 탓하며 수시로 슬픔에 몸을 떤다. 그러다 마침내 호수에 몸을 던진다.

수첩 하나 들고 수만명 죽은 튀르키예로
 
▲ 워터 디바이너 스틸컷
ⓒ (주)더블앤조이 픽쳐스
 
아내의 죽음 뒤 코너는 먼 길을 떠난다. 세 아들의 유해를 찾아 아내 곁에 묻어주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이다. 생애 한 번도 간 적 없는 그 먼 길이 코너에겐 숙명의 여정이 된다. 대영제국과 튀르키예의 수많은 젊음이 진 갈리폴리 해안이 목적지가 된다. 단서는 아들이 써내려간 수첩 하나 뿐, 그 넓은 해안에서 유해를 찾기엔 턱없이 부실한 기록이다.

그러나 코너에겐 확률 따위는 의미가 없다. 한순간에 모두를 잃어버린 이 불행한 사내에겐 오로지 해야만 하는 것, 당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가족을 위해 남은 삶을 바치겠다는 이 사내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는 온 가족을 잃은 한 사내의 이야기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이미 죽은 자식들의 유해를 찾는 과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전쟁 뒤 승전한 영국군이 패망한 오스만 제국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섰다곤 하지만 무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구체화된 계획도 없는 상태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코너가 환영받을 리도 만무한 일이다.

전쟁은 인간을 파괴한다
 
▲ 워터 디바이너 스틸컷
ⓒ (주)더블앤조이 픽쳐스
 
<워터 디바이너>는 죽은 자식을 찾겠다며 먼 길을 떠나온 호주 아버지의 절박함을 그대로 내보인다. 그 마음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물들여 마침내 제 목적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척박한 대지 아래 흐르는 수맥을 탐지하던 아버지는 그 섬세한 감각으로 수많은 유해 가운데서 제 자식들의 것에 다가선다.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내전이며, 침략자의 지배와 독립운동 따위의 복잡다단한 상황들은 자식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영화는 단순하며 선명하다.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수만의 생명이 숨진 이 비극 가운데 죽은 이들 하나하나가 각 비극의 중심이란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사한 젊은이 하나는 제 집에서 귀한 아들이었을 것이고, 수만 명의 아버지와 수만 명의 어머니를 괴롭게 하였으리란 사실을 일깨운다. 어쩌면 수만 명의 아내에게 남편을 앗아가고, 또 수만 명의 자식에게 부모를 빼앗았을 테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대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전쟁은 비극이란 명제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저 아는 것과 각 사연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한 아버지의 고단한 여정을 통해 러셀 크로우가 이루고 싶었던 건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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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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