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왕따'였던 시리아 학살자, 외교무대 복귀 임박…미·영 비판

김서원 2023. 5. 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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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가 12년 만에 아랍연맹(AL) 회원국 자격을 회복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학살자로 지목되며 '왕따'로 전락했던 바샤르 알아사드(57) 시리아 대통령이 외교 무대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시리아 복권을 시도하려는 아랍연맹의 결정에 비판을 쏟아냈다.

시리아가 12년 만에 아랍연맹 회원국으로 복귀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사진)이 지난 2020년 8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신임 국회의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랍연맹은 이날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비공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시리아를 아랍연맹에 다시 포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아랍연맹은 2011년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반(反)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것을 규탄하며 시리아를 연맹에서 퇴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아랍 국가들이 시리아와의 관계 회복에 나서면서 연맹 복귀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사우디와 UAE는 지난 2월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발생 이후 원조에 나서며 알아사드 대통령과 만남을 이어왔다.

시리아의 연맹 복귀는 22개 회원국 가운데 과반수 이상인 13개국이 이번 회의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지면서 가결됐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돼 어느 국가가 표결에 참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카타르 등 일부 아랍 국가들은 시리아의 재가입에 반대하며 회의에 불참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아랍연맹의 의사 결정은 통상 만장일치 합의를 통해 이뤄지지만, 사안에 따라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시리아의 재가입과 동시에 아랍연맹은 향후 시리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이집트 등이 참여하는 장관급 회의체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시리아 정부는 내전을 정치적인 방식으로 종결시키고, 마약 밀매와 난민 등 내전으로 인한 문제를 회원국들과 공동 대응할 것을 약속했다.

아흐메드 아불게이트 아랍연맹 사무총장(왼쪽)은 7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에서 "시리아를 아랍연맹에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아흐메드 아불게이트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에서 "이 결정은 모든 아랍 국가들이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면서도 "아랍 국가들이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의 시작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알아사드 대통령은 오는 19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국제 무대에 공식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아가 연맹에서 회원 자격을 정지당한 이후 약 12년 만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011년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살·고문 등 잔혹 행위를 자행한 인물로 지목된다. 반정부 시위 당시 알아사드 정권은 별도의 수용 시설을 만들어 야권 인사들을 탄압했는데, 이곳에 수감된 상당수는 고문받다 사망했고 정신을 잃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한 주민이 교전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정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알아사드 대통령의 강경 진압은 정부군과 반군 간 내전으로 비화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 제거를 명분으로 민간인 주거 지역에 화학무기를 살포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2014년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 반군 지역에 독가스를 살포해 민간인 포함 14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정황도 있다. 또 2014년 유엔 보고서엔 어린이들이 반군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과 폭행,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내전으로 총 50만 명이 사망하고, 시리아 인구(2300만 명)의 절반가량이 피란민이 됐다는 추산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랍연맹은 내전 초기엔 알아사드 정권의 강경 진압과 잔혹 행위를 규탄하며 시리아와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AP통신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이 주요 동맹국인 러시아와 이란의 도움으로 최근 몇 년간 국토 대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우위를 점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지난 2월 튀르키예·시리아 강진으로 대규모 난민 문제가 발생하자 이웃 아랍 국가들이 시리아 정부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등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파이살 빈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지난달 19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알아사드 대통령을 만나고, 그를 이달 19일 자국에서 열리는 아랍 연맹 정상회담에 정식 초청했다. 사우디 외무장관의 시리아 방문은 2011년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앞서 지난 3월 UAE를 방문해 셰이크 무함마드 빈자이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도 만났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4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회담을 앞두고 파이살 빈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시리아에 대한 지위 복권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7일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면서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핵심 제재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영국 외무부도 "알아사드 정권은 무고한 시리아인들을 구금해 고문하고 살해하고 있다"며 "영국은 여전히 알아사드 정권과의 관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시리아의 동맹국인 러시아는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로 중동 지역에 더 건강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내전으로 발생한 문제도 신속히 해결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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