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더는 쉽지 않은 세상이 됐어요"…옥상달빛의 슬픈 고백

어환희 2023. 5. 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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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듀오 '옥상달빛'의 김윤주(왼쪽)와 박세진. 사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세상엔 답이 없는 일들도 있더라고요. 쉽게 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소속사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듀오 옥상달빛(김윤주·박세진)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표곡 ‘수고했어, 오늘도’로 많은 이들을 위로했던 이들은 더는 위로가 쉽지 않은 일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MBC FM4U)의 DJ로 활동하며 다양한 세상을 알게 됐기 때문이란다.

김윤주는 “30대에 들어서 나 자신의 고민이 아닌 사회나 바깥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즈음 라디오를 시작하게 됐다”며 “그동안 저희는 음악 하는 사람들과 음악적으로 힘든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실제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박세진은 “라디오를 하면서 추상적으로 생각하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며 “특히 코로나19가 터진 후엔 슬픈 가장, 투잡도 모자라 쓰리잡 뛴 청년, 독박 육아 등 힘들다는 사연이 대부분이어서 DJ로서 어떻게 얘기해야 도움이 될지 늘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발간한 에세이 『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에는 이처럼 옥상달빛의 39살 동갑내기 김윤주와 박세진이 라디오를 진행하며 느낀 5년 치의 생각이 켜켜이 담겼다. 라디오 프로그램 속 코너 '희한한 시대'의 글을 다듬고 묶었다. 하루를 보내며 적어온 글을 두 DJ가 매일 번갈아가며 읽는 코너다.

에세이엔 김윤주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매 에피소드에 어울리는 추천곡이 담겼다. 김윤주는 “새벽에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오늘 어땠지?’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까?’ 생각하며 글을 썼다”며 “추천곡 리스트를 굳이 넣어야 하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음악 덕분에 확장된 생각이 글에 담긴 만큼 무조건 넣고 싶었다”고 선곡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달 27일 발간한 옥상달빛의 에세이 『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 사진 위즈덤하우스


'언젠가부터 상상하지 못한 희한한 일들이 우리 일상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박세진의 글 '희한한 시대'의 첫 문장이다. 코로나19·기후변화·전쟁 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말 그대로 '희한한 시대'를 글로 풀어냈다. 김윤주의 글 '무거운 밤'은 버거운 삶을 겨우 끌고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무너지는 마음을, 괜찮아질 거라는 뻔한 말이라도 건네며 추스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적어냈다.

Q. 글과 가사, 쓰면서 어떤 차이가 있던가.
"가사는 멜로디와 짧은 글 속에서 감동도 주고, 속 시원히 긁어줘야 한다. 가사도 물론 어렵지만 긴 글을 쓰는 것도 어렵더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가사와 달리 영감 만으로 분량을 채워 넣을 순 없기 때문이다. 고치고 고쳐도 계속 고칠 거리가 나와서 어려운 작업이었다."(박세진)

Q. 어느덧 데뷔 13년차다. 옥상달빛은 여전히 힐링과 위로의 아이콘이다.
“힐링 이미지를 고수한다든가, 위로를 주기 위한 가사를 쓴다든가 그런 의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 나잇대와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냈는데 감사하게도 데뷔 때부터 반응이 왔다.”(박세진)

Q.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쭉 그랬다. 우리 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고,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얽매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누굴 위로할 처지가 아닌데 무슨 위로의 곡을 쓰겠어’라는 생각에 한동안 작업을 잘하지 못 했다. 그러다 라디오를 하면서 도리어 위로의 곡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김윤주)

Q. 라디오 DJ 활동이 음악 작업에는 어떤 영향을 줬나.
“음악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했던 위로를 못 하게 됐던 것 같다.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힘내세요’ ‘다 잘될 거예요’ 하는 것이 송구스럽기도 했고, 특히 코로나19로 힘든 사연들을 접하면서 슬픈 생각만 드니까 작업이 잘 안되더라. 그래서 ‘그냥 너무 힘들어’ 라는 식으로 곡을 써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분들은 알아줬다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됐다며 긍정적으로 봐주셨고, 위로에 대한 부담을 좀 내려놓게 됐다.”(김윤주)

싱어송라이터 듀오 '옥상달빛'의 김윤주(왼쪽)와 박세진. 사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즐겨 듣는 박세진과 차분한 연주곡을 좋아하는 김윤주는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조합이다. 박세진은 지난 6일 재즈 뮤지션 윤석철과 함께 술을 소재로 한 재즈 보사노바 앨범 '더 브렉퍼스트 클럽(The Breakfast Club): 조찬 클럽'을 발표했다. 이달 초 건강 문제로 라디오를 그만둔 김윤주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레이블 와우산레코드에서 후배 양성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각자 다른 활동 속에서도 1순위는 옥상달빛으로서의 음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옥상달빛, 자신들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세진은 “정규 앨범을 안 낸 지 10년이 됐더라”면서 “올 하반기에 곡을 많이 쓰고 녹음도 열심히 해서 내년 1월 22일에 정규 3집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설렌 목소리로 말했다. 1월 22일은 옥상달빛의 데뷔일이다. 김윤주는 “음악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음악이 많이 나오는 시기가 있는데 그걸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면서 “더 늦어지기 전에 (음악을 위한) 감성을 찾는 데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에 '아무도 관심 없는 슬픔'을 위로했던 두 싱어송라이터는 어느덧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됐다. 여전히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진부한 질문에 신중하고도 진심 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은 모두 태어난 이유가 있고, 지금 처한 상황에선 스스로가 쓸모 없게 느껴지더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쓸모 있을 때가 온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제 경험에서 확신하는 말이다."(박세진)
“힘든 순간도 좋은 순간도 빠르게 지나가니, 순간에 얽매여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모든 사람에게 잘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아끼고 오래 가고 싶은 사람에겐 잘했으면, 스스로 너무 고립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김윤주)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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