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에는 이름이 같은 두 개의 철교가 있습니다
[박태신 기자]
▲ 단양강 잔도 일명 벼랑길. 단양강과 중턱의 산야, 철교 등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1킬로미터 남짓이어서 힘들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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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철교
지난 5월 3일, 단양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메모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단양강 잔도'였다. 유명 관광지 내 강이 있는 곳마다 강가 옆으로 만들어 놓은 둘레길 중 하나라 여겼다. 아마 단양역에서 가까운 곳이라 이곳을 선택한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벼랑길이었다.
▲ 인접해 있는 두 철교 (舊) 상진철교와 신 상진철교. 중앙선 철도 역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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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다리는 중앙선이 단선일 때의 철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영주, 안동을 갈 때 무궁화호를 타고 지나갔던 다리. 맞은편에서 다른 열차가 가까이 접근하면 어느 역에선가 멈춰 서 그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시절의 철교. 열차 속도가 빠르지 않아 창밖의 풍경이 더 섬세하게 보이고, 복선화 전이라 터널도 적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길을 도맡아 다녔던 시절의 철교.
이 두 철교의 이름은 똑같이 상진철교다. 세대교체 무렵의 어정쩡한 동명의 두 다리다. 단양군은 구(舊) 상진철교를 수리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새 철교가 인접해 있어 시끄럽고 너무 낡아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한다. 내가 봐도 저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일이 무의미해 보였다.
▲ 잔도. 나무 패널과 나무 기둥으로 만들었다. '벼랑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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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도'가 뭘까? 3일과 4일 이틀 동안 단양을 여행하는 내내 궁금했다. 심지어 '단양강 잔도'를 걷고 있을 때도 그 의미를 몰랐다. 팸플릿에는 명확하게 설명돼 있지 않았고, 잔도 어디에도 설명 문구가 없었다. 의미를 모르는 길을 잘도 감상하며 걸었다. 집에 와서 사전을 뒤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사다리 잔' 자를 쓰는 '잔교'(棧道)란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을 말한다.
나무 패널로 잘 만든 이 벼랑길을 조성하느라 자연경관을 해쳤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었다. 강과 산을 감상하며 그 풍경에 젖어들었다. 손에 닿을 거리에 있는 벼랑 바위와 끈질기게 이 바위와 자신의 생(生)을 접합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 잔도 위에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단양강 주변의 풍광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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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학천봉전망대 나선형의 길을 따라 올라가며 사방의 경치를 관찰할 수 있는 오픈형 전망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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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관통하는 전망대
남한강 주변의 만학천봉(첩첩이 겹친 골짜기와 수많은 봉우리) 중, 잔도가 가로금을 긋고 있고 단양강과 인접해 있으며 조망이 최고인 봉우리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 이름에서 거만한 느낌이 드는 '만천하스카이워크'의 무대는 잔도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입장권을 사고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는 봉우리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정상 '만학천봉전망대' 앞에 섰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여러 시설을 통칭한 것이고 그중 제일 중요한 곳이 '만학천봉전망대'이다.
조금 이상했다. 전망대 하면 건물의 맨 위쪽 특정한 곳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비스듬한 달걀 모양의 이 전망대는 입구에서부터 360도 사방이 전망대이다. 나선 모양으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전망대인 것이다. 그러니 단양강뿐 아니라 사방의 수많은 산과 골짜기, 봉우리를 전부 돌아보며 천천히 오름길을 걷는 식이 된다.
▲ 만학천봉전망대 맨 위층 이곳에선 멀리 소백산맥 능선까지 보인다. 왼쪽에 작게 튀어나온 곳은 바닥이 투명유리인 '쓰리핑거' 돌출 관람대다. 이름 따라 총 세 군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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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맨 위쪽에 올랐다. 밖으로 툭 튀어나왔고 바닥이 투명유리인 일명 '쓰리핑거'(세 손가락)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단양읍내와 단양강 물줄기, 단양역 그리고 수많은 산을 보았다. 그러다 저 끝 소백산맥 능선까지 눈에 들어왔다. 비로봉이 보이고 천문대 부근도 보였다. 괜히 아득한 세상을 만난 듯했다.
관람 후 '영묘한' 세상에서 나올 때도 잔도를 이용해야 한다. 분명 위 세상과 아래 세상은 달랐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세상을 보아야 함을 알았다. 자기 해체적이고 세상 수용적인 모양새를 보고 '전망대가 다 그렇지' 하는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다행이다. 잔도 가는 길을 그래서 권하고 싶다. 단양 읍내엔 볼 것이 많다. 그 소박한 것들은 다음 글에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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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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