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만찬주 '경주법주 초특선'의 실체
[탁재형 기자]
윤 대통령 부부가 준비한 반주는 한국식 청주(淸酒)인 '경주법주 초특선'이다. 경주법주 초특선은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담근 술로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손꼽히는 명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만찬에 등장한 술에 대해 신문에 실린 설명이다. 기자가 조금이라도 우리 술에 관심이 있었다면, 차마 저렇게는 쓰지 못했을 낯 뜨거운 표현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그건 일본 술이다
▲ 경주법주 초특선 |
ⓒ 경주법주 |
사실상 지금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주세법상 청주'는 엄밀히 말해 모두 일본식 술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쌀알에 누룩곰팡이를 접종해 만든 가루누룩, 즉 입국과 정제효모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몇 천 년에 걸쳐 멀쩡히 만들어 먹던 '맑은' 술 '청주'는 일본의 '세이슈'에게 자리를 내주고 뜬금없는 '약주'(藥酒)라는 이름 안에 갇히고 말았다. 조선 땅에서 술과 관련된 세금을 좀 더 잘 뜯어 가고, 술 만드는 일본인 사업가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1916년에 주세령을 공포하면서, 조선의 '재래 방법'으로 만드는 맑은 술은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도록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 주세령은 미군정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로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전통 누룩을 1% 이상 함유하고 있으면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약재가 한 톨도 안 들어갔어도, 약 냄새는커녕 곡물의 청아한 향만을 풍기고 있어도 현행법상 '약주'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담근'다? 도정률로 술의 좋고 나쁨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일본 술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명주는 도정률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로지 '백세작말'(百洗作末 백 번 씻어 가루를 내다)이라 하여 잘 씻어 불순물을 없앨 뿐이다. 곡물에서 전분질의 핵을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부분이 갖고 있는 복잡한 풍미 역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선 꼭 있어야 하는 요소로 본 것이 우리 조상들이다.
좋은 생선의 좋은 부위 한 점을 잘 썰어 간장에만 찍어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일본인들과 상추에 깻잎에 회 여러 점을 놓고 마늘에 쌈장에 풋고추에 초장에 와사비까지 넣어서 한 쌈 싸먹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은 술빚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과도할 정도로 도정률이 높은 쌀에 집착하는 것과 도정하지 않은 쌀을 그대로 쓰는 것,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평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술빚기에 관여하는 요소들의 복잡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복잡함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간 것이 우리 술이라는 점은 꼭 지적하고 싶다.
빼앗긴 이름 '경주법주'
기시다 총리에게 '경주법주 초특선'을 접대한 것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술이 사실상 진짜 우리 명주의 이름을 빼앗다시피 한 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피해를 입은 술은 국가무형문화재 86-다 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교동법주'다.
경주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만들어 온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다. 원래는 이 쪽을 '경주법주'라고 불렀다. 그 유래에 대한 기록도 명확하다. 숙종 대에 임금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술을 빚는 사옹원의 참봉을 지낸 최국선이 궁중의 양조법을 집안의 아낙네들에게 가르친 것이 그 시초다. '궁중의 법도'대로 만든 술이었기에 '법주'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법주'는 고려시대 이래로 나라의 의식에 사용되던 관용주를 일컫는 말이었다).
조선 시대를 관통해 해방 이후에도 지역 최고의 명주로 이름을 떨치던 경주법주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다. 1966년 8월에 공포된 '약·탁주 제조에 있어 쌀 사용 금지안' 때문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제조하는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이 조치는 당연히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테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주세령의 핵심을 그대로 계승한 박정희 정권이었기에, 주류 산업을 세금 낳는 거위로 생각하고 가급적이면 그 시장 안에서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줄이고 덩치를 키워 컨트롤 하기 쉽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쌀로 술을 빚을 수 없게 되면 자연스럽게 영세한 양조업자들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주정(酒精: 고순도의 식용 에탄올)과 해외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의 쿼터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업체들이 시장을 독차지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업체들은 정부에 협조적인, 성실납세자 이상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에 균열을 가져오는 '밀주'(라고 쓰고 '가양주'라고 읽는다)들은 그래서 더 열심히 때려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신나게 밀주들을 때려잡다 보니, 어느 순간 외국에 자랑할 만한 우리 술이 싸그리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일설에는 중국의 마오타이를 마셔 본 한 미국 외교관이 박정희에게 천진난만하게 '한국에는 그런 술이 없나요?'라고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경북 구미 출신이었던 박정희는 이전부터 경주법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름난 술이니까 이걸 내세우면 되겠지 싶었던 것일까. 경주법주에 대해 특혜를 베풀기로 했다. 쌀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명약주'(銘藥酒)라는 새로운 세금 카테고리를 만들어 낮은 세율을 책정해 주기로 한 것이다. 다만, 대량 생산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하지만 진짜 경주법주는 그렇게 뚝딱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성격의 물건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제법을 대폭 변경하지 않고서는 대량생산이 가능하지 않았기에 문중에서는 그 요구에 응할 수가 없었고, 결국 이 미션은 대구를 대표하는 희석식 소주업체, '금복주'에 맡겨진다.
금복주는 일본의 세이슈(사케) 제법을 적극 도입해, 1973년부터 사케 풍의 '경주법주'를 대량 생산해내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아예 자회사를 따로 차려 '(주)경주법주'라고 이름 붙이고 그 상표권을 나라에 등록해 버린다. 최씨 문중이 오랫동안 만들어 오던 자신들의 술을 '경주법주'라고 부르는 것이 불법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금복주 판 경주법주는 박정희와 그 휘하 국세청의 비호 아래, 특별히 제정된 세법의 혜택까지 받아 가며 경북에서 승승장구하고 해외에 수출까지 한다. 그동안 술도, 이름도 빼앗긴 최씨 문중은 오랫동안 질곡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진짜배기 경주법주가 부활한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된, 1986년의 '향토 술 담그기'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 때였다. 오랫동안 이들을 괴롭혀온 박정희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최씨 문중의 술은 오로지 실력으로, 여러 단계의 심사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과해 세 가지의 국가 무형문화재 술 안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다만 상표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경주교동법주'라고 바꿔야 했다. 가짜 왕자가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어, 진짜 왕자가 개명을 해야 했던 서글픈 이야기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유코 여사가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2023.5.7 |
ⓒ 대통령실 제공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복주 판 경주법주의 역사도 제법 되었고 그간 이뤄진 기술 발전도 있으니 이젠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명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다만 '경주법주 초특선'은 '우리 청주의 명주'가 아니라 '일본의 준마이다이긴죠급 세이슈에 도전장을 내민 한국에서 만든 세이슈' 다.
그런 술을 한일정상 간의 회담에서 마신다? 나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의 총리가 독일 총리의 방문에 맞춰 자국 내에서 정통 독일 제법으로 만든 뮌헨식 바이스비어를 '이스라엘 최고의 명주'라며 소개하는 꼴이다.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게다가 백번 양보해도, 정상회담장에 술을 내는 영예를 얻는 업체는 기업윤리 면에서나 사회공헌 면에서나 타의 모범이 되는, 우리나라의 양조 기업들을 대표할 수 있는 업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금복주? 기사 검색 조금만 해 보시라. 이 회사가 지역에서 얼마나 물의를 많이 일으켰는지 끊이지 않고 나온다. 결혼한 여직원 퇴직 종용에, 홍보대행사에 대한 불법 금품 갈취에, 아르바이트 학생 성희롱까지 아주 다양하다.
윤 대통령은 '더 완벽한 일본 술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금복주 판 경주법주 초특선이 아니라, '진짜배기 경주법주', 교동법주를 만찬상에 냈어야 한다. 당신들이 그토록 없애고 싶어했던 조선의 '청주'는 면면히 살아남았고, 이렇게 훌륭한 맛을 내는 술로 이어지고 있다며 들이밀었어야 한다.
교동법주는 찹쌀과 누룩가루, 교동의 샘물로 밑술을 만들고 이 밑술에 찹쌀고두밥과 생수를 혼합해 본술을 담근 뒤 50일 동안 독을 바꾸어가며 숙성시켜 만든다. 입에 머금으면 복숭아같이 녹진하고 솜사탕처럼 가벼운 향이 혀를 감싸온다. 300년 넘는 세월이 담긴, '진짜의 맛'이다.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는 대통령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가는 맛이니, 그의 혀에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수도 있겠다.
덧) 금복주 경주법주는 제발 '신라 화랑들이 마시던 술'운운하는 마케팅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영남 = 신라'라는 등식 때문에 떠올리게 된 마케팅인 것 같은데, 너무나 안이하다. 무슨 화랑들이 도정률 79%의 사케를 마신다는 말인가. 그리고 엄밀히 말해 최씨집안 경주법주의 유래는 조선 중기에 궁중에서 빚어 마시던 '향온주'와 '내국법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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