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동안 세 번 바뀐 엄마의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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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박정선(48)씨의 도시락은 일생 동안 세 번 바뀌었다.
첫 번째 도시락은 엄마가 십대였을 때 학교에 가져간 도시락이다.
세 번째 도시락은 엄마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싸주는 도시락이다.
엄마는 "누군가가 싸줬던 첫 번째 도시락, 나를 위해 쌌던 두 번째 도시락은 모두 내가 먹는 거였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가가 먹을' 도시락을 싼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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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정선아, 책상 위에 있는 도시락 챙겨 가!"
"오늘은 뭘 싸갈까?"
"뭘 싸줘야 우리 딸이 좋아할까.."
▲ 도시락 엄마의 도시락은 세 번 바뀌었다. |
ⓒ jyleen21 from fixabay |
5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크게 세 번의 변주가 있었던 도시락은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에게 직접 묻고 그 대답을 들었다.
[첫 번째 도시락] 엄마가 싸준 도시락
첫 번째 도시락은 엄마가 십대였을 때 학교에 가져간 도시락이다. 엄마 세대는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나처럼 소풍 때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매일매일 가져가기 때문에 도시락에는 집집마다 반찬 스타일이 녹아 있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농사 일을 하셨기 때문에 엄마의 도시락에는 늘 막 따온 채소들이 한가득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채소와 채소를 찍어 먹을 고추장을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가 친구들의 반찬과 바꿔 먹었다고 했다. 가끔 특별 반찬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그날은 도시락을 여는 순간이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고 했다.
[두 번째 도시락] 직접 싼 도시락
엄마의 두 번째 도시락은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했을 때 직장에 싸가던 도시락이다. 엄마는 종종 도시락을 가져가 점심으로 먹곤 했다고 한다. "그땐 요리도 할 줄 몰랐으니 집에서 보내준 반찬이랑 밥을 담아 가져갔다"고 말했다.
"누가 싸주는 게 아니라 내가 싸서 내가 가져가니까 뭐가 들어있을까 기대하는 맛은 없었다"는 엄마.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었어. 퇴근하는 길에 내일은 뭘 싸갈까 생각하기도 했고!"라고 덧붙였다.
[세 번째 도시락] 아이들을 위한 도시락
세 번째 도시락은 엄마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싸주는 도시락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도시락이라고 했다. 엄마는 "누군가가 싸줬던 첫 번째 도시락, 나를 위해 쌌던 두 번째 도시락은 모두 내가 먹는 거였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가가 먹을' 도시락을 싼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첫째였던 내가 온갖 로망을 가진 아이여서 내가 실망할까 봐 도시락에 뭘 싸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나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소풍 날이 되면 김밥 한 통, 과일 한 통, 그리고 문어모양 소시지만 가득 들어있는 도시락 한 통을 싸줬다. 그날엔 소시지를 가득 가져온 내가 온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소풍 갔다가 뿌듯하게 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더라. 뿌듯하게 걸어오는데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더라."
엄마의 도시락 일대기를 듣고 나니 궁금해졌다. 어떤 도시락이 가장 기억에 남아?라고 물으니 엄마는 나의 수능 도시락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집 첫 수능이기도 했고, 내가 그날 해줄 수 있는 게 도시락 밖에 없으니까 잘 싸고 싶었거든. 진짜 걱정하면서 쌌어. 아빠랑 둘이 한참 동안 뭘 싸줘야 하나 얘기하기도 하고, 인터넷에도 엄청 찾아봤지. 수능 도시락은 무난하게 싸야 한다는데, 자꾸 마음이 넘쳐서 참느라 혼났어."
나는 계속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된 이후로 엄마는 쭉 누군가를 위한 도시락을 싸야 했는데, 혹시 자신을 위한 도시락이 그립지 않아? "
고민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엄마는 단호하게 "지금이 좋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위한 무엇을 한다는 게 책임감이 느껴져서 무겁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버겁지는 않아. 마음을 쓸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게 내 자식들이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거든! 너희는 그저 마음을 가득 받아 맛있게 먹어주면 돼."
▲ 김밥 엄마는 소풍 날이 되면 늘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주셨다. |
ⓒ 김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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