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대신 헬멧 쓴다…맨션 사는 앙투아네트 혈족 25세 왕자님

전수진 2023. 5. 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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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통치한 왕조의 후손이자 카레이서다. [Ferdinand Habsburg-Lothringen Instagram 캡처]


세계의 이목이 영국 찰스 3세 대관식에 쏠린 동안, 유럽의 또 다른 왕조의 후손, 25세 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은 헝가리 다뉴브 강에서 수영 중이었다. 이름에 들어간 '합스부르크'가 그의 왕족 혈통을 증거한다. 그의 증조부는 카를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패배로 끝나며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고, 카를 1세는 추방당하면서 왕조는 막을 내렸다. 프랑스 혁명에서 단두대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핏줄인 셈이다. 페르디난트라는 이름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아들, 특히 장남에게 많이 붙인 이름이었다. 올해 62세인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면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식 수장이 될 그의 공식 명칭은 오스트리아 대공이자 헝가리 왕자다.

그의 증조부는 폐위 및 추방된 후 34세의 나이에 생활고를 겪다 병사했지만, 후손들은 헝가리에 남아 각고 끝에 안정적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의 조부는 왕세자로 자라났지만 평민의 생활에 적응했다. 그 손주인 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은 지난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때로 증조부의 궁전에 놀러 가는데, 만약 우리가 여전히 왕권을 유지했다면 내가 썼을 방도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소 짓궂게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방 인테리어는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내가 방 주인이었으면 더 멋지게 꾸몄을 텐데." 왕궁에 입장하기 위해 그도 다른 관광객들처럼 22달러(약 2만9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다스린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자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페르디난드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의 먼 친척뻘. [중앙포토]


다른 왕가의 후손들과는 달리, 그는 영국 찰스 3세의 대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NYT는 "(성공회로 방향을 튼) 영국 왕실과 정통 가톨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실은 과거에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왕실 역사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다. NYT는 그러나 그가 영국 왕실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적었다. 자유라는 힘이다.

대회 출전 직전에 차를 점검하는 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 [Ferdinand Habsburg-Lothringen Instagram 캡처]


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이 머리에 쓴 건 왕관 대신 헬멧이다. 그의 이름을 구글링하면 왕조 설명 대신 전문 카레이서로서의 그의 화려한 이력과 수상 관련 뉴스가 가득하다. 카레이싱에도 다양한 종목이 있는데, 그는 장거리 전문 선수가 되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NYT에 따르면 짧아도 4시간, 길면 24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달려야 한다고 한다. 그가 속한 포뮬라 원(Formula One)의 팀 이름은 WRT. 팀의 일원인 캐슬린 슈어만은 NYT에 "왕조가 막을 내려서 나로서는 천만다행"이라며 "아니었으면 페르디난트처럼 특출난 재능을 가진 레이서가 왕실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야 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가문의 전통대로 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사진은 그가 최근 헝가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악수하는 모습. [Ferdinand Habsburg-Lothringen Instagram 캡처]


그가 처음으로 레이서의 꿈을 키운 건 7살 무렵이라고 NYT는 전했다. 그는 NYT에 "장난감차에 탄 순간 너무 신나고 좋아서 유모에게 떼를 써서 매일 태워달라고 했다"며 "레이싱이 주는 자유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르망 경주 등 유명한 대회에서 입상한 그에겐 스폰서도 여럿이다. 그는 "더이상 어머니께 손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농담했다. 그는 여동생과 함께 다뉴브강 인근 맨션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NYT에 "내 가족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나의 삶과 가족의 삶은 다르다"며 "왕족의 일원으로 사는 것도 흥미로웠겠지만, 글쎄, 나에겐 나만의 인생이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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