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근로감독관 내사보고·수사기관 피신조서 공개해야"
임금 체불 사건에 대한 노동청의 내사보고·대질조서나 고소 사건에 대한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 검찰의 수사지휘서 중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최모씨와 정모씨가 각각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공개를 요청한 진정서와 사측의 의견서 근로감독관이 작성한 조사보고서와 내사보고, 대질조서 등 정보에 대한 비공개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또 정씨의 경우 경찰이 작성한 의견서·피의자신문조서·수사보고·수사지휘건의와 검사가 작성한 수사지휘서 중 정씨와 피의자들 외 사람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직업, 주소, 연락처, 범죄경력 등 개인에 관한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비공개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최씨와 정씨가 피고들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각 100만원씩의 손해배상청구는 기각했다.
임금 및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에 진정을 제기했다가 '법 위반 없음'을 이유로 사건 종결 처분을 받은 최씨는 강남지청장을 상대로 진정사건 관련 기록 일체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강남지청장은 대질조사에서 최씨가 진술한 내용에 한해서만 공개하는 부분공개처분을 내렸다. 그외 사업장 측이 제출한 매출자료, 의견서, 내사보고서 등에 대해서는 정보비공개 사유를 규정한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4호·7호와 고용노동부 정보공개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4호는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비공개 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항 7호는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비공개 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소송사기로 3명을 고소했던 정씨는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진 뒤 고소사건 관련 기록 일체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검장은 정씨의 진술서와 정씨가 제출한 서류, 불기소결정서 외 자료들에 대해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6호를 이유로 비공개 처분했다.
6호는 법령에 따라 열람할 수 있는 정보 등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명이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공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재판에서 원고들은 "공개를 요구한 정보들에는 정보공개법이 정한 비공개 사유가 없음에도 강남지청장, 검사장은 이에 대해 비공개 결정을 해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해서는 "수사기록 전부에 대해 개괄적인 사유만을 들어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임에도 공개를 거부했으므로 담당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되고 그로 인해 원고들의 알권리, 재판청구권, 행복추구권이 침해돼 대한민국은 원고들이 입은 비재산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최씨의 청구와 관련 강남지청장 측은 재판 도중 비공개 처분을 한 사유로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6호를 추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애초 처분 사유로 든 4호 및 7호와 6호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사에 관한 사항'이라는 비공개 사유(4호)와 관련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며 배척했다.
앞서 대법원은 "해당 조항의 취지는 수사의 방법과 절차 등이 공개돼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에 현저한 곤란을 초래할 위험을 막고자 하는 것"이라며 "수사기록 중 의견서, 보고문서, 내사자료 등이 곧바로 비공개대상 정보라고 볼 것은 아니고, 그 실질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수사의 방법과 절차 등이 공개됨으로써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비로소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정보 중 출석요구서, 내사보고에 수사방법이나 수사절차에 관한 정보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알려진 수사의 방법이나 절차를 넘어 일반에게 공개될 경우 향후 범죄의 예방이나 정보수집, 수사활동 등에 영향을 미쳐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는 않으므로 이 사건 정보가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4호의 비공개대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최씨와 임금 지급 등을 다투고 있는 회사 측 정보들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7호의 비공개대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재무제표에 기재되는 정보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자체로 법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법인등기부 역시 공개를 전제로 작성되는 서류인 점, 대질조서나 사측 의견서에는 영업상 비밀 등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정씨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정보들과 관련해 재판부는 행정기관이 정보공개를 거부한 정보 중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분리할 수 있을 때 공개가 가능한 부분에 한해 비공개처분 중 일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하며, 이 사건 비공개처분된 정보 중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들은 공개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의 경우 피의자들이 자신의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취지의 피의자신문조서이거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 수사결과를 보고하고 지휘를 건의하며 그에 대한 지휘를 받은 서류, 검사가 작성한 항고에 대한 의견서와 항고인의 의견이 담긴 청취서로서 그 내용상 공개로 인해 관계자들의 생명, 신체, 재산에 현저한 지장이 생긴다거나 개인의 내밀한 비밀 등이 알려지게 됨으로써 인격적·정신적 내면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반면, 해당 정보의 공개로 달성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구제 이익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강남지청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정보비공개 처분이 정보공개법을 위반한 위법한 처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최씨와 정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의 일부가 결과적으로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할지라도 피고 강남지청장, 검사장이 성실한 평균적 공무원으로서 요구되는 객관적 주의의무를 어김으로써 피고 대한민국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만큼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처분을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에서 두 사람을 대리한 박진식 법무법인 비트윈 변호사는 "20여년 전부터 대법원은 수사기록에 대해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하라는 일관된 판결을 선고하고 있는데, 지방검찰청 등 국가기관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만연히 대법원 판례에 명백히 반하는 관행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라며 "국가기관의 잘못된 관행이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과거 소송을 통해 비공개 처분이 내려진 정보를 받기까지 6개월에서 8개월 정도 걸렸던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사건이 최근 1년 이상 걸리고 있어 개선 필요성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이와 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100만원의 국가배상을 상징적으로 청구하고 있지만 계속 기각되고 있다"며 "하급심 판결 중에는 대법원에 의해 확립된 법령 해석을 상급 행정기관으로부터 업무지침 등을 통해 전달받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정청이 확립된 법령의 해석에 어긋나는 견해를 고집해 계속해서 위법한 행정처분을 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도 있는 만큼 앞으로 법원이 국가배상을 적극적으로 명하는 방법으로라도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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