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말잔치에 그친 한미 과학기술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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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순방 계기, 한-미 과학기술동맹으로 도약".
지난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과학기술 외교 성과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외교는 국력의 총체적인 반영'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해줬다.
특히 우주개발ㆍ양자과학기술에서 뒤처지고 투자가 소홀했던 한국은 미국의 푸대접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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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순방 계기, 한-미 과학기술동맹으로 도약". 지난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과학기술 외교 성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첨단 기술 전 분야에 대한 한미 양국 간 연대가 확대됐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서의 자리를 견고히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 기술을 뺏길 우려가 높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상 ‘독소 조항’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 미국에 공장을 세운 한국 반도체 회사들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생산 현장을 공개하고 영업 기밀을 제공해야 한다. 지난 30여년간 한국 업체들이 쌓아 온 반도체 제조 노하우ㆍ기술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도체 기술 개발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피땀을 흘려 온 업체ㆍ기술자들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중국이 자국 투자 외국 업체들에게 기술 공유를 요구하고 있어 ‘도적놈(산차이ㆍ山寨) 경제’라고 욕을 먹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보조금 문제와 함께 이 사안도 해결하거나 적어도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기대가 무산됐다.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논의되지 않은 이유가 미 의회 소관인 입법 사항이라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적어도 미 의회 연설에서 ‘자유’를 노래 부를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써서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분야에서도 ‘푸대접’과 말의 성찬에 놀아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미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한 윤 대통령과 동행해 우주 탐사ㆍ과학 협력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한국은 내각 각료인 이 장관이 성명서에 서명한 반면, 미국은 빌 넬슨 NASA 국장도 아닌 펨 멜로이 부국장이 나섰다. NASA가 우리나라 기준 차관급 기관으로 볼 수 있음을 감안하면 격이 낮아 ‘푸대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은 어땠을까? 지난 1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미 때 체결된 미·일 우주 탐사 협력 합의서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직접 서명했다. 주체의 격만 다른 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차이가 컸다. 미ㆍ일은 2020년대 후반 달 착륙 탐사에 일본인 우주인을 끼워 넣기로 하는 등 협력 수준이 다르다. 한미 간 우주 협력은 "앞으로 할 일을 찾아보자"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장관은 백악관 과학정책실장과 만나 ‘한-미 양자정보과학기술 협력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앞으로 잘 해보자"는 취지이지 실질적인 연구ㆍ인력 교류 등 ‘양자 최강국’ 미국에게서 우리가 기대했던 성과는 얻어내지 못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외교는 국력의 총체적인 반영’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해줬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국가적인 뒷받침이 되지 못하면 국제 외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우주개발ㆍ양자과학기술에서 뒤처지고 투자가 소홀했던 한국은 미국의 푸대접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 손에도 거래할 ‘물건’이 있어야 딜이 가능하다는 평범한 현실 말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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