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까다롭네" 거품없는 백종원의 원정 생존기
[이준목 기자]
연이은 악재와 저조한 매출 속에 자존심을 구긴 백종원이 절치부심하며 본격적인 설욕전에 나섰다. 5월 7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장사천재 백사장>에서는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한국식 백반으로 현지 손님을 끌어 모으려는 '백종원 식당'의 고군분투기가 그려졌다.
나폴리에서의 첫 날 장사 결과는 처참했다. 30인분 판매를 목표로 했지만 고작 7인분 판매에 그치며 매출은 122유로(한화 약 18만원)에 불과했다. 장사를 마치고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백종원은 "그리 나쁜건 아니다"라며 애써 위안했지만 말과 달리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백종원과 직원들은 첫 날 시행착오의 원인을 곱씹으며 역습을 준비했다. 한식을 먹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 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먹방 영상'을 제작하고, 실외에는 '야외 천막'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데 익숙한 이탈리아인들의 기호를 반영하여 주류 및 음료 메뉴를 보강하기로 했다.
존 박은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 전통주를 알리고 싶은 욕심에 메뉴에 전통주(막걸리-복분자)만 넣었는데, 여긴 유럽이다. 냉정히 장사를 생각하면 기본 주류는 팔고 전통주는 추천을 하는 식으로 고객들에게 선택지를 드렸어야 했다"고 분석하며 반성했다.
마트에 간 백종원은 장을 보면서도 "100유로도 못팔고 장을 600유로 어치나 봤다. 이럴 때 기분이 제일 거지 같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백종원은 주류 보강 외에에도 신메뉴인 한국식 '다방커피'를 음료 메뉴로 야심차게 추가했다.
이튿날, 제작진은 멤버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백종원 백반집과 같은 상권에 위치한 경쟁 식당들 4곳과 비교한 매출 현황표를 깜짝 공개했다. 첫날 결과로 1위는 역시 현지 맛집이라는 이탈리아 M식당이 매출 1111유로로 압도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2위는 일식 T식당의 431유로, 3위는 해산물 Z식당의 311유로, 4위는 파니니 B식당의 178유로, 122유로의 백종원 백반집은 꼴찌에 그쳤다,
졸지에 '장사천재'에서 '장사꼴찌'로 추락한 백종원은 "자존심 상한다. 바로 다른 가게랑 매출을 비교하는 이런 못된 짓이나 하고 있고"라며 제작진을 향하여 분노했다.
2일차 장사에 나선 백종원은 전날 제육한상에서 손님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잔반으로 많이 남던 유채나물 대신 숙주나물로 대체하며 메뉴를 재정비했다. 약 300유로(약 45만원)을 들여 천막이 있는 야외 테이블도 설치됐다. 또한 권유리가 모델로 나서서 이장우가 휴대폰으로 먹방 영상을 촬영하여 실내에서 계속 플레이함으로써 한식에 낯선 손님들에게 쌈을 싸먹는 법을 보여주게 했다.
장사가 시작되자 직원들은 밖으로 나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인사하며 호객 행위를 했다. 하지만 주방에 있던 백종원은 장사 개시 10분도 안되어 벌써 손님이 없어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종원은 "나의 루틴을 보면 손님이 없고 불안하땐 자꾸 뭘 하게된다. 어떻게 아무 것도 안하면서 멀쩡한척 하겠냐"며 끊임없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면서 뭔가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지나다가 우연히 식당에 관심을 보인 요닐데 할머니는 조언을 구하는 직원들에게 "더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호객행위를 하라"는 팁을 전수했다. 존 박이 가게로 초청한 할머니의 요청으로 백종원은 즉석에서 시식용 한입제육을 만들어냈다. 할머니는 다소 매워하면서도 음식에 호평을 보냈다.
곧이어 할머니의 조언대로 직원들의 적극적인 호객행위에 힘입어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동인구가 적었던 월요일에 비하여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화요일에는 점심 장사가 활기를 띄었다.
특히 여성 손님들은 단정한 비주얼과 플레이팅에 호평을 보냈다. 백종원은 "맛으로 검증받기전에 먼저 눈으로 다르다는걸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고 싶게 만드는 음식을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시각적인 효과도 의식했음을 밝혔다. 백종원의 의도대로 여성 손님들은 제육 한상을 받고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또한 권유리의 먹방 영상을 따라하며 서툴지만 쌈밥 먹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제육 쌈밥은 본래 단일 메뉴였지만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리지널'에서 '덜 매운 맛' '안 매운 맛'에 이어 '간장제육'까지 점점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백종원은 덜 매운 맛을 신청하는 손님들이 늘어나자 파프리카 가루를 이용하여 제육볶음 본연의 색은 살리고 매움은 조절하는 식으로 순발력있게 대처했다.
심지어 한 손님은 '소금이 안들어간 메뉴'를 질문하는 경우까지 나왔다. 백반요리의 특성상 소금이 없는 음식은 불가능했기에 '덜 짜고 덜맵게' 요리해주는 것으로 조율했지만, 백종원은 "조건 진짜 까다롭네"라며 끝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탈리아는 미식의 나라답게 주식인 파스타 종류만 300가지에 이르며 선호도에 따라 면을 익히는 시간까지 선택이 가능할 정도라고. 나폴리인들의 식문화에서 음식의 간이나 메뉴에서 취향에 따른 다양한 요구는 그만큼 당연했던 것.
백종원은 잠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곧바로 노련하게 손님들의 니즈에 따른 맞춤형 음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존 박은 서빙 경험자답게 손님들이 필요로 하거나 혹은 불편해할만한 것을 미리 파악해서 한발 앞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제안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손님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제육 한상을 맛있게 즐겼다. 후식으로 나온 신메뉴 한국식 다방 커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식사를 마친 한 여성 손님은 가게를 둘러보며"이 사람들 정말 똑똑한 것 같다. 완벽한 마케팅이다. 먹방 영상 TV나, 음식을 소개하는 그림이 모두 잘 되어 있다"면서 자연스럽게 메뉴를 이해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수 있는 백종원 식당의 소프트 마케팅에 호평을 보냈다. 2일차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백종원 팀은 경쟁 식당들과 매출 대결에서 꼴찌 탈출에 청신호를 밝혔다.
최근 K-컬처가 글로벌 인기브랜드로 떠오르며 이를 소재로 한 먹방이나 여행 예능이 잇달아 제작되고 있다. 다만 상당수는 '국뽕'으로 대표되는 K-판타지에 기댄 자화자찬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식과 한국문화에 대하여 이미 익숙하거나 우호적인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반응과 칭찬에 만족하는 장면은 이제 뻔하고 식상하다.<장사천재 백사장>은 국내 최고의 요식업자중 한명인 백종원에게 국뽕과 홈어드밴티지가 모두 없는 외국 현지 환경에서도 자력으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사 서바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도전지였던 모로코에서는 극심한 텃세와 바가지에 시달리며 장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방송 후에도 문화적 차이로 인한 현지인들의 비난과 악플세례까지 시달렸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도 첫날부터 현지인들의 취향과는 맞지 않은 메뉴 구성과 미숙한 가게운영으로 손님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한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백종원과 연예인 직원들은 정작 현지에서는 초짜이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또한 제목은 <장사천재 백사장>이지만 동시에 천하의 백종원이라고 한계가 있고 통하지 않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음식 장사'가 단순한 먹방 방송처럼 맛있는 요리을 만들고 먹는 일을 넘어서, 투자-마케팅-서비스-인사-위기관리까지 매순간 수많은 선택과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비즈니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골목식당>에서 수많은 요식업자들의 현실과 시행착오를 분석하며 냉정한 조언을 아끼지않았던 백종원은, 외국에서 본인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수많은 도전과 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실전으로 보여준다. 가끔은 완벽한 성공이나 승리가 아닐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여러 가지 돌발상황속에서도 그안에서 어떻게 최선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장사꾼의 덕목이라고 했을 때, 이러한 백종원의 경험과 유연함은 오히려 열악한 상황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