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죄인인가" 어버이날 떠오른 그 사연... 명복을 빕니다
[김미주 기자]
모든 생은 소중하다. 그 중요성을 말해봤자 무엇하랴.
그래서 모든 죽음 앞에서 슬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구나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의 극단적 선택 앞에서는 고개가 더 숙여진다.
▲ 네이버에서 일하던 워킹맘이 지난해 9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일이, 유족의 고소로 지난 4월 뒤늦게 알려졌다. 이를 다룬 지난 4월 20일자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
ⓒ JTBC |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육아휴직 후 복직한 회사에서 고인은 해오던 일과는 전혀 동떨어진 부서로 배정받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책상을 지키다 오는 일 밖에는 없다'라며 토로했다고 한다. 고인의 생전 메시지에는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 같다' '난 아이를 열심히 키운 것 밖에는 없는데' '이래서 워킹맘이 죄인인가' '아이 졸업식에 갔다 왔다고 뭐라고 하고 그 이후로 눈 밖에 난 것 같다' 라는 차별 속에 괴로워했던 정황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해당 사건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4월 20일 불공정 채용 근절 관련 브리핑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철저하게 감독해서 근절하겠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있었는지, 회사에서는 육아휴직 복직자에 대한 인사 상 불이익 등 조직적으로 차별을 가하는 불합리한 관행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인간으로서 예의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접근해서는 안 된다.
워킹맘이 마주하는 경력단절의 현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며 탈락시킨 면접관
그저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이전까지 자신이 해오던 일들을 매일매일 충실히 해오는 것. 그 단순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일이 현실에서는 이렇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이 죽음은 개인과 개인 간의 예의를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우리 사회가 아직도 타파하지 못하는 공고한 젠더 차별과 조직문화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또한 워킹맘이다. 두 명의 아이를 5년 터울로 출산했고 그 때마다 엄청난 경력단절의 현실에 부딪혔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잠에서 깨지 않은 아이 옷을 갈아입혀 등에 업고 7시 반 문을 여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 회사에서 늦어지는 날은 연장보육이 허락되는 밤 9시까지 맡겨진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일상이 반복됐었다. 첫째 아이는 어린이집 문 열 때 등원해서, 어린이집 불 끌 때 집에 가는 어린이로 유명했다.
"얼마나 돈을 벌겠다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그렇게 오래 맡겨",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안 그러면 정서불안 생긴다", "엄마가 애를 보는게 차라리 돈 버는거야"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특별한 누군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아니다. 스쳐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같은 입장의 양육자들, 먼저 퇴근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아도 인생의 조언은 해주고 싶어하던 직장 상사들로부터 늘상 듣고는 했던 말이다.
둘째를 낳고 다시 재취업하기 위해 면접을 봤을 때의 일이다. 출근 일자까지 상의하며 면접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될 즈음, "가족이 몇 명이예요?"라는 별스럽지 않은 질문이 추가됐다. 내가 방긋 웃으며 "50일된 아이가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순식간에 싸늘해졌던 분위기를 기억한다. 면접관들은 말했다.
"아이가 너무 어린데 그럼 아이는 누가 봐요?"
"제가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들은 자주 아파서 일을 빠지는 경우들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어렵겠네요."
결국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면접은 불합격됐다.
▲ '오늘은 어버이날'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에서 열린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회관 관계자가 한 어르신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있다. 2023.5.8 |
ⓒ 연합뉴스 |
흔한 말이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조직문화도, 양육자에게 건네는 한 마디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 동료 양육자에게 부당한 처우가 행해질 때,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함께 싸워줬으면 좋겠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함에도, 현 정부에서 벌어지는 퇴보된 노동정책에 대해 같이 쓴소리하고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출산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동네 동네마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 채워지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워킹맘'의 이야기에 집중해 주기를 바란다.
더 많은 분들이 이 분의 죽음을 애도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일이 더 반복되지 않도록, 계속해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이를 피상적이고 단순한 '하나의 사건'으로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희생자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이 죽음은 이렇게 잊혀서는 안 된다.
둘째 아이가 어버이날을 맞아 꼬깃꼬깃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온 종이 카네이션을 손에 들고 나는 이 워킹맘의 이야기를 전한다. 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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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구로구의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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