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 '성+인물' 전제부터 틀렸다
[고은 기자]
▲ <성+인물> 예고편 유튜브 캡처 |
ⓒ 넷플릭스 |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예고편이 자신 있게 단언한 문장이다. <성+인물>은 다양한 나라의 성(性)과 성 산업 속 인물을 탐구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지난 4월 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프로그램이 처음 방문한 곳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낯선 나라 '일본'이다. 예고했던 것처럼 공인된 플랫폼에서는 처음 보는 화면이 이어졌다. MC 신동엽과 성시경이 찾은 성 산업 중심지 아키하바라에는 성인용품샵, 성인 VR관이 건물 한 채로 들어서 있고 존재 자체로 퍼포먼스가 되는 드래그퀸(진한 화장을 하고 스커트를 입는 등, 여성성을 과장되게 흉내내는 남성)이 이질감 없이 서 있다. 유흥과 노동, 돈과 착취, 권력과 탐욕이 뒤엉킨 성산업이 합법의 영역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동물농장 시청자게시판 캡처본 |
ⓒ 고은 |
'신동엽 동물농장 하차 요구'가 말하는 것
유흥산업은 합법인데 성매매는 불법인 한국은 사실상 불법과 합법이 엉킨 성 산업 문화를 갖고 있다. 일본 성 산업에 대한 긍정이 결국 성 산업 옹호로 읽힐 때 한국이 이를 문화적 차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 성 문화 및 성 산업을 둘러싼 한국의 풍경은 한층 더 복잡하다. 때문에 <성+인물>의 상대적으로 안일한 현실 인식은 그 속의 영향력 있는 스피커, 신동엽의 '동물농장 하차 요구'로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신동엽을 문제적 인물로 규정하고 어떠한 방송에도 출연시키지 말라는 요구가 아니다. 개그맨 신동엽에게 '성'이란 그에게만 허락된 블루체크와 같다. '성'과 관련한 발언이 그의 스피커를 거치면 대중에게 위화감 없이 스민다는 의미다. 따라서 신동엽을 통해 일본의 성 산업이 전문적인 것, 안전한 것으로 비칠 때 성에 대한 개방성, 터부 없는 대화 속 재미만이 흡수되고 한국 성 산업의 여러 이면이 지워지는 문제를 미리 차단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유튜브를 넘어 넷플릭스까지 뻗은 단편적인 성 담론을 경계하는 움직임이다.
▲ 드라마 <모범택시2>가 재현한 '클럽 버닝썬 게이트' 에피소드 유튜브 캡처 |
ⓒ 고은 |
룸살롱 공화국 한국이 성에 보수적이라고?
한국과 성 문화, 그리고 성 산업. 이 세 단어의 연결만으로 한국사회 속 무수한 장면들이 우르르 밀려온다. 과연 한국이 일본보다 성 산업에 수동적이고 미온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골목에 들어차다 못해 학원가 혹은 스쿨존 근처까지 쏟아져 나온 유흥업소, 남성들의 접대 문화가 뿌리 깊은 룸살롱, 단속을 피해 숨어든 오피스텔 성매매까지. 한국의 성매매 산업은 이미 30조 원 규모에 육박했고, 성 산업은 공공연한 산업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그럼 성 산업에 진심인 한국이 겉보기에 보수성을 띠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때 '보수성'이란 성을 둘러싼 보편적인 인식과 관련된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만난 성교육은 과연 효과적이었나. 교육기관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성에 대한 논의가 가정에서는 건강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결국 성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금기와 윤리, 부정적인 느낌은 위같이 성을 터부시 한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 <성+인물> 메인 포스터 |
ⓒ 넷플릭스 |
명과 암의 이분법으로 성산업을 바라본 <성+인물>
<성+인물>이 다양한 국가의 성 문화 및 성 산업을 조명하는 것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은 한국의 성 담론 확장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적 정서와 성 산업을 둘러싼 복합적인 현실에 빗대어 각 국가의 성 산업의 이점과 한계를 읽어낼 수 있는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성+인물: 일본 편>에서 성 산업을 명과 암으로 나눠 암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성 산업을 조명했다.
<성+인물: 일본 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하다. 직업적 자부심, 경제적 이득을 얻은 성 산업 종사자의 입을 빌려 막대한 수익과 전문성까지 갖춘 어엿한 산업으로 일본의 성 산업을 소개했다. 일본 성 산업의 무수한 이해관계자와 일본 성 산업의 적극적인 한국 소비자가 말하고 싶고 듣고 싶었을 이야기다.
성 산업 관련 부정적인 시선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성+인물> PD는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여행 예능물에서 그 산업의 문제점이 있는데, 왜 다루지 않았냐고 물으면 충분히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비판인가 싶다"고 말했다.
대중들의 위 같은 비판은 균형적인 시각으로 모든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공허한 요구보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성 산업과 관련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모순적인 성 보수주의와 불법과 합법의 얽힌 성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성 담론을 확장한다는 콘텐츠는 어떠한 논의의 장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성 담론 확장은 무엇보다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마주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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