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남겨둔 셔틀외교 복원…물컵 반잔은 아직

구채은 2023. 5. 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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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대신 유감표명 갈음한 日기시다
g7서 전향적 표현 나올지 관심
후쿠시마 시찰단 파견 등 부분서 진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최대 갈등 현안이었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사과 대신 유감 표명으로 갈음했다. “혹독한 환경에서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언급했다. 외견상으론 진전된 언급으로 보이지만 사견을 전제로 한 데다 ‘혹독한 환경’에 대한 책임 주체가 생략된 점, 주어를 적시하지 않은 점은 ‘성의 있는 호응 조치’로 보기엔 불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7일 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6일 발표된 조치(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에 관한 한국 정부에 의한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준 데 대해 감명받았다”며 “나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일단 명시적 표현만 놓고 봤을 땐 지난 3월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이후 국내 다수 여론이 요구해온 ‘일본 측의 보다 분명한 사과 입장 표명’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어려운 환경 아래 있던 분들이 강제징용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에는 분명히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개인적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유감 표명의 입장은 유지하되 ‘개인적 생각’으로 의미를 다소 축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일본 측 배상 참여 부분에서도 별도 언급은 없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물컵 반잔 아직…G7 정상회의서 한걸음 더 나아간 발언 나올 수도

전문가들은 상반된 평가를 내놓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전제를 단데다 ‘한국사람에 대해서’라는 식의 주어도 없었다. 상당히 미흡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라디오에서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2015년 12월 외무상으로 방한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 해결을 하는 합의를 했고, 윤석열 정부 들어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의 비용 지불 없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봤다. 최 전 차관은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 대해 “한국으로서는 상당히 부족하지만 자신(기시다 총리)은 성의를 다했다고 국제사회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일 정상이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기로 한 만큼, 기시다 총리의 보다 전향적인 인식 표명이 그때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사를 제외한 부분들은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다. 두 정상이 양국 간 경제 안보 교류를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미 양국 간 재무장관 회담이 7년 만에 재개됐고, 경제 안보 협의회와 안보 대화도 시작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후쿠시마 韓시찰, 우리입장 고려…경제교류 확대

아울러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은 일본이 우리의 입장을 일부 고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을 포함한 11개국 전문가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처리 과정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 전문가들이 현장을 방문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에 대한 한국의 의견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여서 한국 전문가들이 파견하도록 한 것은 성과”라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용단과 주도로 시작이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전날 윤 대통령과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정부 간 현안을 논의했다면 방한 이튿날인 이날에는 아침부터 정치인, 경제인들을 잇달아 만나 국회와 기업 차원의 협력을 논의한 후 오후 일본으로 귀국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첫 일정으로 오전 9시께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 간사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나 한일 경제·안보 공조 강화를 위한 양국 의회 간 협력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주한일본대사관 주최로 이날 오전 10시15분에 열린 비공개 차담회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무대행,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경제 6단체장과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한일경제협회장)을 만났다.

기시다 총리와 경제인들은 ‘셔틀외교’ 복원에 따른 한일 양국의 경제인 교류 활성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 개발, 우주와 양자,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미래소재 등 첨단 분야에서 양국 기업 간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 기시다 총리는 8일 출국을 앞두고 기자단에게 "윤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더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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