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은 우리 것" 中에 칼 빼든 美…K산업 불이익 없어야[기자수첩-산업IT]
쏟아지는 美 규제 속 韓 기업 불똥…반도체법·IRA 불확실성 지속
후속 조치 성과 동시에 추가 법안에 대한 韓 입장 전달 총력전 필요
산 넘어 산이다. 반도체와 전기차 산업을 무섭게 뒤흔들었던 미·중 패권 경쟁이 이번에는 바이오, 인공지능(AI), 에너지 등 전방위로 확전될 태세다. 물불 안가리는 첨단기술 전쟁에 애먼 국내 업체들의 불안만 가중되고 있다. 글로벌 업황 불황으로 가뜩이나 허덕이는 우리 기업들의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까 우려스럽다.
미국 연방의회는 3일(현지시간)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후속으로 '중국 경쟁 2.0' 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첨단기술에 해당하는 바이오, 배터리, 에너지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중국의 굴기를 차단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집권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미국과 우리 동맹이 중국의 기술 발전에 필요한 자금줄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해 규제 동참에 한국 등 동맹국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을 시사했다. 미국도, 중국도 포기할 수 없는 국내 기업들에게는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안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공화당과의 협상도 남아있어 IRA처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대중국 견제를 요구하는 미국 내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내년 대선도 임박해 표심을 잡기 위한 강도 높은 규제를 계속해서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희토류 등 광물 수출 제한 작업에 착수한데다 메모리 제조사인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보안 조사를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방어전에 나서고 있다. 미·중 규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해외에 사업장을 둔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의 출구 전략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지원법, IRA에서 알 수 있듯이 미 법안 처리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우려 사항을 여러차례 전달하며 규제 완화에 총력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긴밀한 협의를 계속한다"는 원칙적 합의 외에 반도체 기업들에게 주어진 성과는 없었다. 그나마 중국 내 반도체장비 반입 제한이 연장될 가능성이 열렸지만 1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레거시(범용) 설비 교체·수리 정도여서 마음놓을 상황은 아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자사 제품이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처지에 놓였다.
반도체, 전기차 등 글로벌 입지가 탄탄한 우리 기업들의 입장도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첨단기술 규제 범위를 늘리면 국내 산업계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뻔하다. 미국은 중국으로 첨단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자국 기업은 물론, 동맹국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수출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우리가 동조하겠다는 시그널을 줄 경우, 중국의 상당한 반발과 보복을 맞닥뜨려야 한다. 중국에 투자했거나 투자중인 한국 업체들로서는 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이다.
첨단기술 경쟁을 둘러싼 미·중의 다툼은 종료 시점과 손익 규모를 알 수 없다는 데서 기업들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 과정을 무사히 지나가려면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피해를 최소화할 해법을 조속히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현안인 반도체지원법, 대중국 수출 통제 등에서 완화된 결과를 끌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미국측의 양보를 하나라도 받아내야 다음 협상에서도 보다 유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빈 미국방문' 성과를 열거하며 "우리 기업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한 합의를 토대로 긴밀한 협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법, IRA 후속 조치에 총력전을 펼치는 동시에'중국 경쟁 2.0'에 대한 우리 업계의 우려사항을 충실히 전달해야 한다. 미·중 갈등에 낀 우리 기업들이 부담을 내려놓고 정상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선제적이고도 실리적인 성과없이는 한국 경제도 낙관할 수 없다는 굳은 각오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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