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구순의 아버지가 입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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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라일락꽃 향기를 쫓아 거닐던 4월도 잠시, 5월을 맞았다. 시간을 돌이키면 5월에 달콤한 추억이 가장 많다. 내 생일이 들어있고 필요 이상으로 감성이 풍부해지는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사는 일이 기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사는 것이 누군가에는 행복이고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는 것이다.
지난주 아내가 병원에서 큰 수술 차 입원했다. 수속을 마치고 병상에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병원을 나왔다. 남편으로서 함께 병상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웠다. 집에 구순을 넘긴 고령의 아버지가 있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도 사정을 알기에 말은 안 해도 속으론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병마와 씨름할 아내에게 그야말로 죄인이 된 심정이다. 병상을 함께 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면서 진정 가족이 맞는지 자책도 했다.
아내는 내가 20년 전 암으로 병원에 있을 때나 재발해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나를 살리기 위해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어찌 보면 맹목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 어버이날을 앞두고 꽃집에 가득한 카네이션 |
ⓒ 최은경 |
8일 어버이날인 오늘은 아버지가 노환으로 입원하신다. '어버이날'이 아니라 입원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병원에서 아버지 간호를 하면서 매달 항암 치료를 받는 나까지 포함하면 지금 우리 가족 셋은 모두가 병원 신세를 지는 셈이다.
가족들의 연이은 입원 등 고통스러운 경험을 접하면서 내가 평소 무모하리만큼 낙관적이고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허황된 말들이 되레 집안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엄습했다.
아버지 입원 준비물을 가지고 나서는 텅 빈 집의 거실과 방은 온기가 없어 냉랭하다. 환희가 아닌 슬픔으로 5월을 맞는 우리 가족이 잘 되길 바라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5월이 이렇게 속절없고 잔인한 적은 없었다. 정말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삶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기며 가족이라는 힘으로 버티고 있다.
가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다. 돌아가신 지 벌써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꿈에 가끔 문득 나타난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내가 속도 많이 썩이고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아 가슴에 사무쳐 그럴 것이다.
어머니는 생전에 우리 집 생활 전반을 책임질 정도로 억척이었다. 집안일에 무심한 아버지를 떳떳한 가장에다 자존심까지 세워 주었을 뿐 아니라 공부 못하고 겉도는 자식들을 단속하며 사람으로 만든 것도 어머니였다.
지금은 어머니 대신 아내가 우리 가족과 살림을 대표하고 있다. 눈이 침침한 구순의 아버지가 볼 수 있으며 귀도 어둡지만 작게나마 들을 수 있는 것은 조석으로 식사를 챙기는 아내 덕이다.
나도 아내의 치성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 모든 걸 자포자기할 때 나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애들을 무탈하게 키워냈다. 이제야 정신 차려보니 지난 40년 가까운 시간은 아내에게 인고의 세월이었다.
시아버지 수발에다 병약한 남편 구완까지 아내의 헌신과 희생이 없다면 우리 가족은 벌써 해체되고 아버지와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아내는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번 입원의 고통도 스스로 감내할 뿐이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다시금 생각한다. 항상 행복할 수 없지만 가족이라면 어떠한 고통도 능히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가족은 말만으로도 든든하고 푸근한 존재다. 지금 우리 집 세 식구는 서로 의지하며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행복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말했다. 방점은 불행한 가족의 다양한 사연에 두고 있지만 행복한 가족은 '화목'에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어제 입원한 아내한테 문자 연락이 왔다. 수술이 잘 되고 조만간 퇴원할 수 있다는 전갈이다. 반가우면서도 미안함이 밀려온다. 병상의 아버지도 아내 소식에 기뻐하며 연신 고맙다는 표정이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 같다는 걸 새삼 깨닫는 5월이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시련이 금세 사라지고 예전처럼 오롯이 즐기는 5월이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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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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