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판결, 인과관계 성립 여부 불분명"…경총 전문가 회의

중대재해처벌법 1·2호 판결 시사점 및 향후 영향 분석

중대재해처벌법 1‧2호 사건 및 판결 개요. ⓒ한국경영자총협회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위반 사건에 대해 법원이 엄중한 형량을 내린 가운데,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판결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시사점을 찾기 위한 전문가 회의를 8일 개최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와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중처법 1호인 ‘온유파트너스 요양병원 증축 현장 하청근로자 추락사 사건(2022년 4월 14일)’과 2호인 ‘한국제강 철강공장 방열판 낙하에 따른 하청근로자 사망 사건(2022년 3월 16일)’에 대한 판결이 다뤄졌다.

전문가들은 1‧2호 사건 모두 검찰의 공소사실(범죄 혐의)을 피고인(대표이사)이 인정함에 따라, 재판과정에서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사고 사이 인과관계 성립 여부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두 사건 모두 단 한 차례의 공판만 진행한 뒤 판결이 이뤄졌다.

형사처벌의 핵심요건인 범죄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중처법으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중처법 의무 위반→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구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위반→사망의 결과 발생’의 2단계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하지만, 1‧2호 사건 모두 대표이사의 중처법 의무위반과 사망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근거나 논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공소사실을 보면 원청 대표이사의 중처법 의무위반이 하청업체의 산안법 위반(작업계획서 미수립 등)과 사망사고 발생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그밖에 ▲수사기관(노동청·검찰)이 하청업체가 산안법상 해야 할 구체적 안전조치를 원청 경영책임자의 중처법상 의무로 잘못 이해해 기소했고, 법리 다툼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점 ▲1·2호 판결사례로 검찰의 공소사실이 그대로 인정(자백)될 경우 법률 규정에 따라 징역형 위주의 무거운 형벌이 경영책임자에게 내려질 것이라는 점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형사처벌 가능성 증대 등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정진우 교수는 “중처법 1·2호 판결은 피고인이 자백을 하다 보니 법적 다툼이 없어 법원에서 사실상 검토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이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다른 사건에 시사하는 점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에 너무 많은 허점이 보이며, 유죄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이것에 꿰맞추기 위한 논리 전개를 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며, 법원에서 유무죄가 다퉈지지 않으면 고용부의 자의적 수사와 검찰의 기소가 남발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김상민 변호사는 “중처법 제정 이후 법 위반사항과 사망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는지 논란이 많았는데, 1·2호 판결은 자백으로 인해 법원이 정밀한 논증 없이 인과관계를 쉽게 인정했다”며 “추후 인과관계를 적극 다투는 사건에서의 법원 판결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중처법의 과도한 처벌규정에도 이번 판결은 인과관계 입증에 대한 철저한 법리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며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중한 처벌이 부과되지 않도록 법 적용 시기를 추가로 유예하는 등 정부가 하루빨리 중처법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