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애용하지만 열악한 산업, 택배에 대하여
[김성호 기자]
어느 굴지 기업의 비화가 담긴 책을 읽은 일이 있다.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불법사례도 적잖이 담겨 있었다.
비자금은 장부에 없는 돈이다. 회계장부에 드러나지 않은 비밀스런 돈이란 뜻이다. 그러나 기업은, 특히 공연히 투자자를 모집하는 상장기업엔 회계 외 돈이 있어선 안 된다. 비자금을 마련한다는 건 장부를 조작한다는 뜻이고,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건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하는 돈을 몰래 당겨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 까대기 책 표지 |
ⓒ 보리 |
장갑 한 장도 받지 못하는 일꾼의 사정
이종철의 <까대기>에서 느낀 감상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택배회사에서 보낸 수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이 만화에서 다음과 같은 장면을 만나면서다.
주인공은 택배회사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다. 물류센터에서 넘어온 택배를 다시 세부 지역별로 분류하여 차에 싣는 게 그의 일이다.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온갖 물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나간다. 종일 물건을 들고 날라야 하니 손이 상하기도 쉽다. 그래서 장갑은 필수품이라 해도 될 정도다.
소모품이라 해도 좋을 장갑인데 회사에서는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다. 장갑을 달라고 사무실을 가면 구멍이 나고 해지고 온통 못쓰게 된 장갑이 가득 담긴 상자를 주며 여기서 골라 쓰라고 말할 뿐이다. '그깟 장갑 얼마나 하느냐'고 불평하고 싶지만 고개를 들면 죄다 그렇게 묵묵히 일하는 중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떠올린다. 제 보호장구를 사비로 마련해야 하는 어느 지방 소방관의 사연을 들은 일이 있다. 적잖은 간호사들이 오염된 간호복을 집으로 가져가 손수 세탁한다. 전기일을 하는 어느 기술자는 회사가 정규직 직원들의 절연장구만 제공한다며 비정규직은 알아서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택배 또한 다르지 않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전 국민이 쓰지만 어려운 이유
<까대기>가 그리는 택배업의 풍경은 그야말로 막막하다. 전 국민이 택배를 쓰는 시대니 업계 또한 호황 중 호황이어야 마땅하건만, 상황은 오늘내일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하기만 하다.
주인공이 처음 속한 업체는 소규모 택배회사의 지역 대리점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내내 주인공이 마주하는 건 열악한 현실이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채 200만 원이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일한다. 택배기사들은 아르바이트가 구해지지 않으면 직접 상하차까지 하고, 매일 할당된 물건을 처리하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돈을 적게 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돈이 없어서다. 대기업이 장악한 택배업계에서 작은 업계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틸 뿐이다. 택배 값 3000원 뒤에 숨겨진 현실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업체들과 개당 몇 백 원의 물건들을 들고 밤늦게까지 분주히 움직이는 기사들이 있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 직접 겪은 택배업 풍경
모두가 제 일을 열심히 하지만 누구도 부자가 되지 못하는, 심지어는 어제보다 오늘 더욱 열악해지기만 하는 상황이 가슴을 눌러온다. 그 와중에 택배를 받아볼 뿐, 그 일의 이면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관심도 막막하게 덮쳐온다. 배송비 3000원의 이면엔 열악한 집하장과 여가를 가질 수 없는 기사들,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의 사정이 숨어 있다.
<까대기>는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택배업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다. 택배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현장을 가까이서 그렸고, 그 안에서 일에 매진하는 이들의 삶도 사람냄새 나게 다뤘다. 그러면서도 제 생각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누군가의 사연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장단이 분명한 이 선택으로, 작품은 선명하진 않지만 모두를 불편하지 않게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뚜렷한 문제의식이나 비판, 해결책이 제시되진 않아도 이 책을 읽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택배를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 중 택배일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음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들이 놓인 열악한 현실과 그 현실을 만드는 부조리한 구조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문제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