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가 마신 '경주법주'…美에 '망신' 당한 박정희가 만들었다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더욱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천년고도의 명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만찬을 할 때 윤 대통령이 식탁에 오른 술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구절판과 탕평채, 한우갈비찜, 자연산 대하찜, 메밀 냉면 등과 함께 만찬장에 등장한 이 술은 ‘경주법주 초특선’이었다.
경주법주 처음 맛본 해외정상은 포드 美 대통령
사케를 선호하는 기시다 총리 취향을 고려해 대통령실이 선택한 경주법주. 이 술을 맛본 국가 정상은 기시다 총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경주법주는 1974년 11월 한국을 찾은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환영만찬회에 오르며 국제외교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경주법주 주식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금복주에 따르면, 경주법주 시작은 포드 전 대통령 환영만찬회 2년 전인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은 우방국인 한국에 닉슨 대통령 방중 배경을 설명하려고 당시 극동 담당자였던 마셜 그린 차관보를 파견했다.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 들른 그린 차관보는 중국 대표 술인 마오타이주(茅台酒)를 맛보고 그윽한 향과 맛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린 차관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한국에도 그런 술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 있게 권할 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 집권 후 1965년 양곡관리법을 통해 쌀로 술을 담그지 못하게 하면서 전통주 명맥이 끊어진 탓이 컸다.
화랑들 즐겨 마신 경주법주, 대한민국 대표술로
그린 차관보에게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술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때 선택된 술이 과거 신라시대 화랑이 즐겨 마셨다는 경주법주였다. 술을 만들 때 예법에 따라 빚는 시기가 정해져 있고 양조법이 엄격해 ‘법주(法酒)’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고, 불법을 따르는 승려들이 만들어 ‘법주’라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경주법주 관계자는 “다행히 경주 지방 율동 손씨, 교동 최씨, 양동 이씨 가문에서 경주법주 제조법이 전수돼 온 덕분에 복원이 가능했다”며 “이들에게 술 빚는 법을 배우면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국세청에서 경주법주 제조면허를 받은 금복주는 1972년 9월 경주시 시래동에 자회사 형태로 경주법주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73년 6월에는 경주법주 시판을 개시했고, 74년 11월 포드 전 미국 대통령 환영만찬회, 85년 5월 남북적십자회담 만찬장 등에 축하주로 올랐다.
경주법주 초특선 도정률 ‘79%’ 세계 최고 수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만찬 자리에 오른 ‘경주법주 초특선’은 경주법주 중에서도 고급화된 술이다. 2010년 4월 출시된 경주법주 초특선은 도정률 79%(정미율 2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이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대접한 최고급 사케인 '닷사이23(獺祭 23)' 도정률 77%보다 높다.
경주법주 관계자는 “쌀알 79%를 깎아내는 정미 과정을 거쳐 단백질 등 성분을 제거하고 남은 속쌀 21%만 원료로 사용해 한층 더 깨끗한 맛과 상큼한 향을 즐길 수 있다”며 “정제 방식도 3000회 이상 회전되는 최첨단 원심분리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 인위적 압력으로 술을 얻는 방식이 아닌 드립(drip) 방식을 쓴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복주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 만찬주로 경주법주 초특선이 오르자 들떠 있다. 이진욱 금복주 홍보팀장은 “한일 정상회담 만찬에 경주법주가 올랐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알았다. 대통령실에서 미리 업체에 따로 연락을 해오거나 귀띔해 준 것은 없다”며 “경주법주 초특선이 이번에도 만찬주로 선정된 것은 대한민국 국주(國酒)로서 손색이 없는 맛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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