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OAK를 사랑했다"···WS 3연패 전설, 바이다 블루 사망

배중현 2023. 5.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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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절의 바이다 블루. 게티이미지


한 시대를 풍미한 왼손 투수 바이다 블루가 숨을 거뒀다.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8일(한국시간) '1971년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역사상 최연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고 1972년부터 오클랜드의 월드시리즈(WS) 3연패를 이끈 블루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향년 73세.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오클랜드 구단은 성명을 통해 '바이다 블루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선수는 없다'며 '3번의 WS MVP, 6번의 올스타, 사이영상 수상, 오클랜드 구단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였다. 블루는 언제나 프랜차이즈의 전설이자 친구로 남을 것이다. 힘든 시기에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1969년 빅리그에 데뷔한 블루의 통산 성적은 209승 161패 37세이브 평균자책점 3.27이다. 불같은 파이어볼러로 타자를 압도했다. 1971년에는 24승 8패 평균자책점 1.81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 수상했다. 시즌 뒤 괴짜 구단주 찰리 핀리와 연봉을 놓고 정면 출동, 이듬해 4월까지 잠시 야구판을 떠나기도 했다. 블루는 1976년 "핀리의 다음 숨소리가 그의 마지막 숨소리가 되길 바란다. 그가 소아마비(polio)로 쓰러져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극한 대립이 이어졌다.

오클랜드 시절 핀리 구단주와 자주 충돌했던 블루는 결국 1978년 3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캔자스시티 로열스(1982~83)를 거쳐 다시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었고 198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화려한 성적만큼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블루는 1983년 12월 코카인 문제로 연방 교도소에서 3개월 복역했고 2005년에는 음주운전 적발로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적지 않은 자선 행사에 참여하는 등 선수 생활 이후 그의 활동에는 많은 평가가 엇갈린다.

오클랜드의 또 다른 레전드 데이브 스튜어트는 '나의 멘토, 영웅, 친구'라며 블루의 죽음을 애도했다. 마크 캇세이 오클랜드 감독은 "그는 오클랜드를 사랑했다. 그가 이 조직에 끼친 영향은 지금까지 느껴진다"며 "정말 슬픈 날이다. 그의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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