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리고 보자는 '전세사기 특별법'… 법안 심사 꽉 막힌 까닭은

박준이 2023. 5. 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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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비상에 '조속히' 외치는 여야
적용 대상·방법 두고 이견 여전
4월 처리 불발, 5월 협의 여부 주목

전세사기 피해자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와 국회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착수했지만, 전세사기 개념 정의부터 대응 방향까지 쟁점마다 여야 간 이견이 노출되며 난항을 겪고 있다.

'4월 본회의 처리' 불발, 조급해진 여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4일 국회 국토위 관계자에 따르면 특별법 논의를 위한 다음 소위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여야는 이례적으로 관련법 심사를 서둘고 있지만 2차례 소위에서 첨예한 입장차를 확인했다. 특별법에 대한 협의는 원내 지도부 차원으로 다시 넘어간 상황이다.

관계자는 "이제는 여야 원내 지도부끼리 (일정, 이견 등을) 협의 중"이라고 "새 원내대표(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저쪽(국민의힘)에서 국회 본회의 일정이나 이런 것들을 논의하면서 전세사기 관련해서도 큰 틀의 합의를 이뤄내면 주말 사이에 (합의될 것으로) 기대를 해보고 있다. 논의가 나오면 바로 저희(국토위)는 언제든지 소위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결단을 남겨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여야와 정부는 모두 조속히 특별법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1일 국민의힘·민주당·정의당 3당 정책위의장이 만난 자리에서 각 당은 27일 본회의에서의 법안 처리를 공언했었다. 그러나 정부안 발의가 늦어진 데다, 국토위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약속 시한은 미뤄졌다.

아직도 여야는 '조속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다. 총선을 1년 남짓 앞둔 데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매일같이 드러나면서 수습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극 좁혀지지 않는 이유는

특별법 협의가 어려운 이유는 각 당이 주장하는 대책 내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은 대상 적용 범위 부분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특별법의 적용대상 요건은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을 경우 등 총 6가지다.

여기에서 1일 제시한 수정안에서는 보증금 기준을 기존 3억원 이하에서 최대 4억5000만원까지 인정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또 '전세사기 의도'의 기준을 임대인 등의 기망 또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는 자로 구체화했다.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는 대상 요건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수정안에 대해서도 야당은 범위가 협소하며, 모든 피해 사례를 구제받을 수 없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또 다른 쟁점은 피해 지원 방법이다. 정부안은 피해자가 매수를 희망할 시 ▲우선매수권 부여 ▲조세채권 안분 ▲낙찰자금 지원 ▲경·공매 유예·정지 ▲취득세 면제, 재산세 감면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매수는 하지 않은 채 거주만 희망할 경우에는 공공이 해당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식 등도 정부·여당안에 담겼다.

하지만 야당은 공공이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특별법은 세부적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전세보증금을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방안이 반영되어 있다. 반면 정부·여당은 국가가 직접 개인의 보증금, 채권 등을 매입해주는 방식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허종식 민주당 의원은 3일 소위 도중 기자들과 만나 "이미 날아간 보증금, 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정부는 안 된다는 원칙이 확고해서 그 부분은 안 되고 있다"라며 "대신 정부는 경·공매를 중지시키고 우선매수권을 통해서 이런 부분 보완하겠다는 것"이라고 협상 상황을 소개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세부 대책들이 안건으로 논의되고 있어 협의가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정의당은 3일 소위에서 현행 '소액 보증금 우선 변제 제도'에 특례를 적용하는 대안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속히' 보단 '촘촘히' 제정해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치권이 속도전을 강조하지만, 피해자들은 촘촘한 대책에 더 힘을 쏟아 달라고 요청한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정부안에 대해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며 "정부가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 유형을 나누고 지원책을 도출한 뒤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위 여당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일 소위를 마치고 "굉장히 복잡다단한 많은 문제들이 얽혀서 좀 더 어떻게 하면 지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대의명분에 대해선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다음에 계속해서 심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도 "피해자들에게 폭넓고 깊게 지원할 수 있도록 계속 논의하겠다"며 "간사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앞으로 또 회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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