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오너 일가 싸움에 입만 쳐다볼건가

최일권 2023. 5.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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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나라 재벌가의 형제 싸움은 심심찮게 벌어졌다.

효성, 롯데, 금호그룹 오너 일가에서 지분과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형제의 난'을 꺼내든 건 최근 효성 일가의 싸움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주요 그룹에서 벌어지는 오너일가 '형제의 난'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는 당사자 간 대결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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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나라 재벌가의 형제 싸움은 심심찮게 벌어졌다. 효성, 롯데, 금호그룹 오너 일가에서 지분과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초반 현대가 갈등이 있었고 2007년엔 형제는 아니지만 사돈지간이었던 한화와 대림(현 DL)의 계열사 분쟁도 있었다. 언론은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형제의 난’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한쪽의 승리로 매듭지은 결과도 있었고, 아예 계열분리해 별도 기업집단을 꾸린 사례도 있다. 드물지만 ‘형제의 난’이 자식에게 이어져 ‘조카의 난’으로 번진 경우도 있었다.

‘형제의 난’을 꺼내든 건 최근 효성 일가의 싸움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효성 일가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첫 재판이 열렸다. 그는 2013년 퇴사한 이후인 2014년 7월 형인 조현준 효성 회장과 주요 임원진의 횡령·배임 의혹 등을 주장하며 고소·고발했는데, 조 회장 측은 협박을 받았다며 2017년 맞고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조 회장과 아버지인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를 결정한 바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효성 중공업 부문 수익 창출 등에 크게 기여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도록 조 명예회장에게 강요했으며 조 회장에게는 홍보대행사 전 대표와 함께 배우자 음해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겁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날 출석하면서 "조 회장과 효성은 자신들의 부정과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십 수년간 음해하고 핍박해왔다. 이번 고소는 저에 대한 보복"이라며 "죄짓지 말자고 이야기한 것밖에 없는데 그게 죄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언론들은 그의 발언에 초점을 맞췄다.

돌이켜보면 주요 그룹에서 벌어지는 오너일가 ‘형제의 난’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는 당사자 간 대결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등이라는 소재를 좋아하는 언론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관련 인물의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롯데 ‘형제의 난’이 벌어진 이후 쏟아지는 언론보도에 한 방송진행자는 "너무 형제간 대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룹 일가의 갈등을 단지 인물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되는 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주가와 투자가 달라진다. 롯데의 경우엔 우호지분 확보로 배당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가가 뛰었고 한화-대림 간 합작계열사 갈등 땐 한쪽 회사 고위 관계자가 지분 매입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상대편 모기업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분란의 진행상황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에 미칠 파장을 짚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조 전 부사장 재판과 관련된 한 인사는 "자칫 효성 전체는 물론이고 여론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싸움과 갈등 같은 자극적인 소재는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특히 온라인 뉴스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유혹을 떨치긴 힘들다. 하지만 언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오너일가의 갈등마저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덩달아 고민할 때가 됐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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