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요즘 뭐 봐?]‘낭만닥터 김사부3’, 낭만 없는 세상과 맞서는 우리 시대의 사부

김은구 2023. 5. 8.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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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포스터(사진=SBS 제공)


‘감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적 상태.’ 낭만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본래는 로마(Roma), 로맨스(Romance)에서 온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어떤 태도로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한 SBS 금토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에서 ‘낭만’, 아니 ‘낭만닥터’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의사와 연관지어서 ‘낭만’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먼저 ‘병원’이 가진 이중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아픈 환자를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다소 성스러운(?) 공간의 이미지가 그 하나라면, 정반대로 아프고 죽을 위기에 몰려 있어도 돈이 없으면 치료받기 어려운 속물적인 공간의 이미지가 다른 하나다. 외과만 하더라도 생명이 경각에 놓인 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과의들이 있지만, 그 기술을 생명과는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미용을 위해 쓰면서 사업화하는 외과의들도 있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지만, 돈을 벌어야 운영되는 사업체이기도 하다. 이 성(聖)과 속(俗)이 겹쳐 있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말하는 ‘낭만’은 지나치게 속물화되어가는 병원과 맞서는 김사부(한석규)라는 문제적 인물을 그리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시골에 위치한 ‘돌담병원’은 도시의 으리으리한 시설을 갖춘 병원과는 묘한 대결구도를 만든다. 시설이 그다지 좋진 않지만 생명을 살리는 건 그런 시설이나 돈 혹은 권력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의사들의 의지라는 걸 김사부는 그 존재 자체로 보여준다. 그가 꿈꾸고 있는 ‘외상센터’는 그런 곳이다. 돈이 없고 힘이 없어도 누구나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귀하게 여겨지는 그런 병원 말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시즌2까지 이 시골의 작은 돌담병원과 같은 재단의 거대병원이 병원 운용을 두고 맞붙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사부는 이 곳에 권역외상센터를 짓는 꿈을 계속 꾸어왔는데 시즌3는 드디어 그 숙원을 이룬 것으로 시작한다. 깔끔한 외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외상센터를 돌담병원 바로 옆에 지은 것.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싶지만, 드라마는 돌담병원 흉부외과 전문의인 차은재(이성경)의 아버지이자 김사부의 라이벌이었던 차진만(이경영)을 등장시킴으로써 또 다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돌담병원으로 오는 조건으로 외상센터에서 김사부를 제외시켜 달라는 제안을 하기 때문이다. 원칙과 약속, 시스템을 강조하는 차진만의 등장은 그래서 이번 시즌3가 풀어나갈 ‘낭만’이 무엇인가를 슬쩍 드러낸다. 결국 그런 원칙, 시스템만을 앞세우다 정작 환자의 생명이 도외시되는 상황들을 김사부의 ‘낭만적인 일갈’로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탈북자들의 치료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에서도 김사부의 이러한 ‘낭만’이 드러난다. 남북 고위급 실무자 회담이 치러지고 있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황이라 탈북자들을 돌담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 함장의 이야기를 김사부는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다. “아니 뭐 그런 것까지 이 의사가 다 고려해야 되는 겁니까? 전쟁터에서도 부상자는 아군, 적군 따지지 않고 치료부터 해주는 게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하물며! 살겠다고 목숨까지 걸고 이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민간인이고요. 거기다가 정치적 상황 뭐 어쩌고저쩌고 갖다 붙이는 거 이거 좀 반칙 아닙니까?” 김사부에게 외부적 상황에 대한 고려 같은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위급한 생명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것 하나뿐이다. 

너무나 낭만적인 생각이고 말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김사부의 이런 말과 행동은 가슴 한 켠을 시원하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건 다름 아닌 낭만 없는 세상으로 오로지 돈과 이익에 의해 돌아가고, 심지어 생명의 가치조차 폄하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일갈이 담겨 있어서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어느 순간 돈을 버는 사업체가 되는 그 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낭만 없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김사부 같은 판타지를 갈망하게 된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낭만을 설파하는 우리 시대의 사부를.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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