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책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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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책 읽기는 가장 쉬운 놀이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아무 책이나 골라 펼치면 그곳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가득했다.
나는 늘 그림책보다 그림이 없는 동화책을 선호했는데 책 속의 내용을 마음대로 그려내며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전만큼 자주 책을 읽지는 않는데, 책보다 더 편리한 영상 매체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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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책 읽기는 가장 쉬운 놀이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아무 책이나 골라 펼치면 그곳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가득했다. 누군가 공들여 완성해놓은 다이내믹한 서사를 누워서도 즐길 수 있었다. 내 방에서 눈으로 글자를 따라 읽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다니 참 편리한 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림책보다 그림이 없는 동화책을 선호했는데 책 속의 내용을 마음대로 그려내며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푹 빠져 전권을 40여번 읽었다. 어느 날 영화로 제작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러 갔을 때 너무나 실망하고 말았다. 모든 장면이 열심히 상상해온 것과 완벽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이십여년이 흐른 요즘의 나는 어린 시절처럼 개인적 즐거움보다는 직업적 이유와 지식 습득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여전히 책을 읽다보면 기쁨에 겨워 황홀해지고는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어린 시절만큼 빈번하게 찾아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예전만큼 자주 책을 읽지는 않는데, 책보다 더 편리한 영상 매체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영상은 너무나 쉽게 책으로부터 나의 시선을 빼앗아간다. 더 자극적이고 더 편하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글자를 보고 뇌를 활성화시켜 상상하고 추론해야 한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책 읽기는 능동적인 지적 활동이지만 영상을 보는 행위는 수동적이다. 영상을 보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이미지를 머리로 상상할 필요가 없다. 쓰지 않는 근육이 약해지듯 사용하지 않는 상상력은 퇴화하기 마련이다.
상상력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힘이다. 이해는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배려와 여유를 낳는다. 배려와 여유가 나날이 귀해지는 데에는 짧은 영상들을 빠르게 넘겨보며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작금의 세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떤 방식의 회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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