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케아 의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모니터에 관한 괴담이 화제였다. 언뜻 보면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사물이 누군가의 업무를 수시로 마비시킬 정도로 엮여 있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엔지니어 A씨는 이케아에서 마르쿠스라는 사무용 의자를 구매해 사용했다. 그런데 A씨가 의자에 앉거나 일어날 때마다 PC 모니터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는 처음엔 모니터 문제라 추정했다. 모니터 전원이나 연결 케이블 문제라 보고 이를 교체했다. 그러나 모니터가 먹통이 되는 증상은 여전했다.
A씨는 이케아 의자에 앉을 때만 먹통 증상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고 모니터의 문제가 아닌 의자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했다. 실제로 다른 의자를 가져와 앉았을 때는 모니터에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모니터와 이케아 의자의 호환성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의자가 PC의 주요 부품이거나 연결기기도 아니라 명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불가사의한 현상을 이해할 방법으로는 유일해 보였다. 모니터가 이케아 의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니.
A씨는 온라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구하려 했다. 한 온라인 포럼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의 사례가 눈에 띄었다. 그 사람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면서 원인을 추정했다. 해당 의자 제품에 부착된 부품이 모니터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추측이었다.
이케아 의자에는 앉고 일어날 때 완충 작용을 하는 실린더가 있고, 이 실린더에 플라스틱 덮개가 부착돼 있었다. 의자의 높낮이가 조정되거나 사람이 앉아 마찰이 생길 때 이 실린더나 플라스틱 덮개에서 정전기가 발생(ESD)할 수 있다. 이 정전기가 사람을 타고 올라가 모니터에 전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의자에 앉을 때 사람이 몸을 살짝 구부리게 되는데, 이때 모니터와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의자에서 발생한 정전기가 모니터로 전달되는 것이다. 전기 자극에 민감한 모니터는 화면이 어두워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특히 실내 습도가 40% 미만으로 낮은 상태에서 의자에 앉거나 일어나면 정전기가 더 잘 발생한다. 실제로 의자에 정전기 발생을 막는 접지선을 연결하거나 습도를 높이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니터가 이케아 의자에 알레르기를 앓는다는 ‘괴담’은 사람이 전기를 전달하는 매개로 작용해 발생한 현상이라는 ‘과학적 인과’로 결론났다. 이케아 의자뿐만 아니라 가스 시프트 방식의 실린더를 사용하는 사무용 의자는 같은 이유로 모니터 작동 이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미 한 글로벌 디스플레이 기업은 모니터가 깜빡거리는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면 의자가 원인일 수 있다는 설명을 고객지원 사이트에 게재해놨었다.
모든 일에는 그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때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일들도 세세히 살펴보면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원인이 여러 가지이고 복합적이라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려울지언정. 하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이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점차 줄어드는 시대로 변해가는 것 같다. 원인을 찾는 여정이 너무 고단해 ‘의자 알레르기가 있는 모니터’처럼 그럴싸한 말로 궁금증을 달래고 넘어가는 게 관행처럼 여겨지는 모습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잃는 선택을 하는 원인을 전세를 선택한 피해자나 극악무도한 전세사기꾼에게 돌리고, 피해자를 양산한 구조적 허점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것처럼. 저출산의 원인이 20대 남성의 의무 군복무에 있다고 보고 3명의 자녀를 낳으면 면제를 해주겠다는 설익은 대책을 내놓는 것처럼.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적절한 원인 찾기 노력 없이 그럴싸한 추정들로만 채워진 후 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해결을 위해선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사회엔 아직 원인 규명을 필요로 하는 ‘이케아 의자와 모니터’가 많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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