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아해놈입니까, 어린이입니까?

2023. 5. 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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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5월이면 우리는 언제나 어린이를 떠올린다. ‘어린이’라는 표현을 널리 사용하기 전에는 아동을 ‘아해놈’ ‘애녀석’ ‘어린애’라고 부르며 하대하고 무시했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단어를 존칭으로 공식화하며 어린이날 제정에 앞장섬으로써 아동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린이라고 높여 부른 지 10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존중받고 있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는 여전히 아동학대가 만연하고 있다. 2021년 아동학대 관련 주요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3만7605건으로 2020년 대비 21.7% 포인트 증가했다. 2021년 1월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이 폐지됐음에도 여전히 훈육을 이유로 체벌·폭언 등이 아동에게 자행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아동이 정확한 의사표현으로 어른에 대항할 수 없어 손쉬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 출입을 거부하는 노키즈존의 증가 현상이나 아이가 울거나 시끄럽다는 이유로 기차나 비행기에서 부모를 폭행해 논란이 된 사건은 아동과 그 부모에 대한 혐오가 널리 퍼져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노키즈존은 어린이를 ‘아해놈’이라 불렀던 과거 아동관으로 회귀하는 일이자 어린이 당사자에게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어린 시절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돼 갑자기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일상생활은 어떠한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2023년 아동행복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부·수면·운동·미디어 시간 측면에서 하루 일상을 모두 균형 있게 사용하는 아이들은 전체 응답 아동의 1.3%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하거나 잠을 적게 자며, 운동을 거의 하지 않거나 미디어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남용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일상이 균형되지 않은 아이들은 훨씬 더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아이들은 매일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엄청난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가난한 아이들은 다채로운 경험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 방치돼 있었다. 가난한 아이는 가난한 대로, 풍요로운 아이는 풍요로운 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정과 사회, 일상에서 총체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아동을 돌봄과 보호의 대상만이 아닌 권리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아동에 대한 관점은 아이들의 ‘미숙함’에 맞춰지기 쉬워 성인과 동등하게 누려야 할 천부적 권리에서 아동을 배제할 위험이 크다. 가정과 사회는 아동이 본인 삶의 주인이자 넓게는 아동정책 당사자라는 관점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아동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 아동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정책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지 능력이 성인에 비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동의 참여권 보장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성인이라고 항상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처음 할 때는 느리고 서툴며 실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감내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참여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 더 값진 의미가 있으므로 아동 역시 실수하더라도 참여 경험이 주는 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정부는 365일이 어린이날일 수 있도록 아동권리보장원을 만들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우리 시대의 방정환 선생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보건복지부와 함께 모든 아동의 행복과 권리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노력만으로 아동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아동들은 가정과 학교, 오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대우와 존중을 통해 이 사회가 자신들을 대하는 시선을 느낀다. 아동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는 어린이날 하루만 아동을 환대할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아동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실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변화는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방정환 선생이 생각한 어린이날의 의미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가정 안에서부터 아동의 생각과 말에 귀 기울이고, 아동을 ‘자식’이나 ‘학생’이 아닌 고유한 ‘인격체’로 존중해 보자. 어린이를 나와 같은 동료 시민으로 존중한다면 우리나라는 아동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며, 우리 모두에게도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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