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혈세로 메우는 한전 적자… 전기 과소비자에 보조금 주는 격
한반도 주변의 야간 위성사진을 본 적이 있다. 북한은 깜깜한 반면 우리는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이 사진은 남북한 간 경제력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우리 전기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싼지를 증거해주기도 한다. 전기값이 싸지 않고서야 야밤을 대낮 같이 밝힐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기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평균 40% 정도 싸며, 경쟁국 일본에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제 곧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한다. 전기를 싸게 판 한국전력이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금년 초에 훌쩍 오른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분노하기까지 했지만, 언론 매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기사를 올리는 덕분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 최저요금으로 전기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산업 경쟁력이라든가 물가 안정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아무리 치장을 해도 인위적으로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은 계속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격을 장기간 통제하다가는 북한처럼 암흑천지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한전은 발전회사가 아니다. 한전은 국내의 모든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독점적으로 사들여 소비자에게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전기 택배업체다. 다만 사고파는 가격은 한전이 아니고 정부가 정한다. 전기가 필수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정부가 책정한 전기판매가격은 ㎾h당 평균 120.5원이었는데, 발전소로부터 구입한 가격은 155.5원이었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서 작년에 한전의 적자 규모는 물경 32조원을 넘어섰고, 금년에도 엄청날 거라고들 한다.
정부가 원가를 고려해 전기값을 정한다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젠 누구나 알게 됐고, 종국에는 세금으로 이 적자를 메워주리라는 것도 직감하고 있다. 전기를 펑펑 쓴 사람에게 피 같은 세금을 퍼주는 격이다. 이런 일이 지속된다면 아무도 전기를 아껴 쓰지 않게 된다. 결국 비정상적 가격체계는 과소비라는 엉뚱한 결과를 내고 만다.
전기료와 같은 공공요금을 정부가 관리함으로써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1% 포인트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원가 절감을 통해 수출 경쟁력 강화라든가 고용 확대와 같은 긍정적 효과가 많지만, 친환경에너지 개발을 지체시키는 등 부정적 효과도 적지 않다. 사실 친환경에너지가 잘 착근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들 에너지의 가격 대비 효율성, 즉 가성비가 낮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탈탄소 친환경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는 글로벌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분야에 획기적 발전이 절실하다고 하겠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즉 전기값을 인위적으로 싸게 하면 친환경에너지 개발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이 쌀수록 발전단가가 싼 에너지를 더 많이 이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의 19%를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총발전량의 8%만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참고로 독일은 46%). 정책당국이 전기요금을 당장의 물가불안 요인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무엇으로 전기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한전의 본업인 전기택배의 효율성도 중요하다. 어렵게 만든 전기가 배송 도중에 줄줄 새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전기 소비의 유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능형전력망(Smart Grid)을 서둘러 갖출 필요가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전기 공급자와 소비자가 정보를 실시간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사업이다. 여기에는 깊은 연구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한전이 있어야 한다.
한전은 금년에 약 7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라는데, 스마트그리드 구축 사업도 여기에 포함돼 있기를 바란다. 사실 그보다는 대규모 적자에 빚으로 연명하는 한전이 투자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다. 정부는 당장의 전기요금을 낮추는 것에 골몰하기보다는 스마트그리드 구축과 같은 미래의 전기요금을 낮추는 데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한전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부도가 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한전은 정부가 상환을 보장해주는 채권을 발행해 적자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규모 채권 발행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작년에 한전이 3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채권을 발행하는 바람에 자금 조달을 채권 발행에 의존하는 카드사와 캐피털사는 연말에 영업을 거의 접었다. 한전채가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이들 기업으로는 자금이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년 4월까지 한전채는 이미 10조원 가까이 발행됐음에도 금융시장의 긴장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신용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 간 금리 격차)는 전기요금 조정이 지연되기 시작하던 4월 이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저신용등급 기업은 물론이고 신용이 탄탄한 회사마저도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을 수가 있다. 자칫하다가는 경기 부진과 맞물려 기업 도산이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했다면 기업 운영도 그에 걸맞게 시장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국이 모든 것을 일일이 지시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특히나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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