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베네치아의 영광과 기억,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동북부 베네토 지방 사람들이 5세기경 서로마를 멸망시킨 훈족을 피해 건설한 해상도시다. 바다에 나무말뚝을 박아 돌과 흙을 메꿔 만든 인공 섬들 위에 건물들을 조밀하게 세웠다. 물길을 남겨 만든 운하들은 거미줄 같은 교통망이 되었고 곳곳에 크고 작은 광장을 두어 해상도시의 답답함을 해소했다.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대운하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도시의 중심인 산 마르코 대성당과 광장이 있다.
9세기 베네치아 무역상들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도 마가의 시신을 훔쳐와 봉안소인 산 마르코 성당을 축조했다. 5개의 돔을 올리고 화려한 모자이크 그림들로 내외부를 장식한 현존 대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유럽판 대표 건축물이다. 웅장한 공간에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내부는 ‘지상에 재현된 천국’으로 여겨졌다. 대성당 전면과 측면으로 대광장(피아짜)과 소광장(피아쩨타)이 있고, 두 개의 광장은 직각으로 만난다. 교차점에는 높은 종탑을 세워 두 광장을 절묘하게 구획하는 동시에 하나의 공간처럼 연결한다.
3면에 아케이드를 세워 광장의 독립적 존재감을 확보한 대광장은 오피스와 쇼핑과 카페들이 밀집한 도시의 일상적 중심이다. 대성당에서 멀리 갈수록 폭이 좁아 드는 사다리꼴 광장인데 투시도 효과로 인해 실제보다 더 깊고 더 넓게 보인다. 도제(Doxe·도시국가의 통치자)의 궁궐과 도서관 등 공공시설로 감싸진 소광장의 한 면은 바다와 항구로 열려 있어 해양도시 베네치아의 관문 역할을 한다. 대광장은 도시를 향해, 소광장은 바다를 향해, 그리고 산 마르코 성당은 하늘나라를 향하며 강력했던 해양도시 공화국 베네치아의 번영을 기억하게 한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는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건축물들은 도시를 존재시키기 위해 반복하는 기억의 기호들입니다.”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 출신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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