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전세 사기
전세가 제도로 자리 잡은 건 1970년대다. 산업화로 한 해 평균 35만 명이 서울로 몰렸지만, 새집은 3만~5만 가구에 그쳤다. 집은 부족했고 값은 치솟았다.
당시 정부는 수출에 집중했다. 은행은 주로 기업에 돈을 빌려줬고 개인은 대출이 어려웠다.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이라는 목돈을 보태 집을 사 시세차익을 기대했고 세입자는 안정적인 거주지를 확보했다.
1980년대 ‘3저 호황’으로 유동자금이 넘쳐나며 전셋값이 뛰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전세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했고 집주인은 전셋값을 앞당겨 올렸다. 서울 전셋값은 1989년 29.6%, 1990년 23.7% 뛰며 유례없이 폭등했다. 1990년 두 달간 17명의 세입자가 전셋값 급등을 비관해 자살하는 ‘전세 파동’이 일었다.
전세는 1998년 외환위기(IMF) 때 다시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 전셋값이 급락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발생했다. 2004년 출범한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전세자금대출 보증을 섰고 2005년 금융권 전체가 전세대출을 다뤘다.
‘전세 파동’은 2020년 ‘임대차 3법’ 여파로 재연됐다. 문재인 정부도 세입자 보호를 앞세워 전세거주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전세대출 한도를 집값의 100%로 확대했다. 집주인은 전셋값을 올렸고 세입자는 오른 전셋값을 대출로 충당했다. 전셋값이 떨어지자 다시 역전세난이 왔고 이번엔 전세 사기 피해로 번졌다.
정부가 지난 27일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내놨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전세 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본 것도, 지원 여부를 결정할 ‘사기 의도’ 판단 기준도 논란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예방’은 없고 ‘수습’만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세 사기의 가장 흔한 수법인 ‘대출 먹튀’는 여전히 대처 방법이 없다. 세입자는 계약일에 계약금(10%)을 낸 후 실제 이삿날 잔금(90%)을 치를 때까지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도 알 방법이 없다. 유일한 보증금 안전장치인 전세보증보험도 효력이 전입신고일 다음 날 0시부터 생긴다. 이 사이 근저당·압류 등이 진행되거나 집주인이 바뀌면 보증금을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다. 세입자가 원하는 건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예방 장치다.
최현주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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