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 세기에 걸친 가족의 얼굴이 우리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근대기 우리나라 대가족의 주거와 복식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대형 초상화는 독일에서 개최한 배운성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1930~40년대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화가 배운성의 유학은 당대의 부자이자 서화애호가, 백인기의 아들 백명곤의 유학 뒷바라지를 위한 동행에서 비롯했다. ‘가족도’의 가족 또한 서생으로 더부살이했던 주인 백인기의 가족을 회상하며 그린 것으로 추정됐으나, 최근 가옥의 형태만 빌려왔을 뿐 화가 자신의 가족을 담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가 남긴 자화상을 보면 그림 맨 왼쪽의 남성은 배운성 자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배운성의 이름이 한국미술사에 등장한 것은 파리 골동품상에서 그의 작품 48점이 대거 발견된 2000년대 전후다. 서생이었지만 빛나는 재능으로 유럽에서 활약했던,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자신의 그림조차 챙기지 못한 채 귀국했고, 아내의 사상이 문제가 돼 다시 서울을 떠나 월북하며 지워졌던 이름. 그림 맨 가장자리에 서 있는 그가 가장 소속되고 싶었던 곳은 어디일까? 이 그림은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1939년 일본 유학시절에 만난 이중섭과 마사코. 두 사람의 행복은 6·25전쟁이 발발하며 흩어진다. 부산과 통영, 제주로 거처를 옮기며 지냈던 가족은 결국 곤궁함을 이기지 못하고, 1952년 마사코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하며 사실상 해체된다. ‘시인 구상의 가족’(1955)은 친구 구상 시인의 집에 더부살이하던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흐뭇한 아버지의 얼굴과 세발자전거에 타서 활짝 웃는 아들, 아내와 딸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화가 자신까지. 히라가나로 써서 부친 수많은 편지, 그의 그림속에서 여러번 주제로 반복된 가족 그림들은 이런 이중섭의 그리움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가족과 함께 살겠다는 그의 꿈은 1955년 두 차례 열렸던 개인전이 실패하며 영영 좌절됐다.
1959년 한국 최초 광고사진 스튜디오 ‘김한용사진연구소’를 창설한 김한용은 한국 광고사진의 역사 그 자체다. 광고 이미지에 포착된 1960년대 가족의 모습은 제조업과 해외수출업이 가파르게 성장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시기를 반영한다.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로 출발한 모나미화학은 고급 크레파스의 대명사였던 ‘왕자파스’를 출시한다. 김한용은 어머니에게 왕자파스를 하나씩 선물받고 기뻐하는 딸과 아들의 단란한 모습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컬러 현상 시스템으로 경쾌하게 구현했다. 전쟁의 상흔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경제적 풍요로 발돋움하던 시기. 당대 모두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어머니상은 이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자녀 교육에 힘쓰고, 가정을 화목하게 돌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치 알록달록한 컬러 크레파스처럼.
1세대 작가주의 사진작가 주명덕은 이 시기, 급격한 산업화가 초래한 전통 질서의 재편을 사진으로 끈질기게 추적했다. 월간지 사진기자 시절 총 8회에 걸쳐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한국의 가족’ 연작이 그 대표작. 핵가족의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한 70년대. 기존 가족 질서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면서도 여전히 대가족 사상이 우위를 점했던 때의 혼란스러운 가족상을 포착했다.
두 사진은 ‘한국의 가족, 동부이촌동’과 ‘한국의 가족, 익산’이다. 아들딸 하나씩 잘 낳아 기른 도시의 부유한 젊은 부부는 아파트 창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익산의 대가족은 조부모와 부모, 네 자식과 사촌 그리고 마당의 암탉까지 복작복작하게 자리한다. 1971년 같은 해에 찍혔음에도 전혀 다른 시공간인 것처럼 말이다.
전몽각은 우리나라 최초의 생활사진작가라는 사진사적 의미를 남겼다. 즐기기 위한 사진, 아마추어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윤미네 집〉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가족사진집 중 하나일 것이다. 첫딸 윤미가 태어나 시집가는 날까지, 카메라 렌즈를 넘어 가족과 가까워지려 했던 아버지의 노력이 남긴 26년간의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기록. 3남매와 아내 이문강 씨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까지 묻어나는 이 기록에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중산층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1964년, 작고 튼튼하며 저렴한 일본 SLR 카메라가 세계시장에 등장하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손에 쥐기 시작했다. 전몽각 작가가 사용했던 건 아사히 펜탁스. 당시 존재했던 SLR의 모든 기초 측광 방식이 적용된 카메라다. 그 시대, 아내와 아이들의 순간을 담으려 했던 아버지의 기록은 이렇게 사랑과 역사로 남았다.
소설가 오영수의 장남으로, 예술과 밀접한 환경에서 유복하게 자란 민중화가 오윤의 시선은 항상 민초에 머물렀다. 군부 정권의 독재가 이어지던 1979년에는 이에 반발하는 미술가 모임 ‘현실과 발언’ 창립 작가로 나섰다. 1980년 개최된 창립전은 미술관에서 당일 전시를 취소하고, 전원까지 내리자 관객들이 촛불을 들고 전시를 관람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Family 2’(1982)는 급격한 산업도시화가 야기한 다양한 ‘업’을 통해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배달부, 여공, 공사장 노동자, 버스 안내양, 깡깡이공(선박의 녹을 제거하던 여성 노동자) 등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농민으로 추정되는 부모를 중앙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작가가 존중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징하게 드러난다. 오른쪽 뒤에 배치된 화이트칼라 남성은 플라톤의 〈행복론〉을 손에 들고 무언가 이들에게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굳게 입을 다문, 다정함이나 정겨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가족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은 가족 중심의 시트콤과 드라마의 전성시대였다. 주로 정서적·물질적으로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흐름을 따라잡기 버거워하는 가부장과 자녀들이 마찰을 빚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했다.
남자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제사에 임한다.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남자 어른들과 제사상 앞에 있는 것은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자들은 문지방을 넘지 않고 마루에 앉거나 서 있다. 고무줄 바지에 한껏 지친 모습으로. 사진작가 이선민은 당시 유행했던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그 한 줄이 얼마나 거짓인지 담기 위해 30대 여자들의 삶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이순자의 집-제사’는 2000년대 초반에도 남아 있는 가부장적 전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힘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마도 제사상을 차렸을 여성들은 정작 제사 바깥에 놓여 있는 풍경.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 광경이 사실은 얼마나 이질적이며 ‘기이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를 포착한 이선민은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여성의 주체적 삶과 자유의 실천 가능성을 모색한다.
사진작가 김인숙은 재일 동포 3세다. 2001년부터 자신의 성장 배경이 된 학교와 가족 등을 배경으로 세대 간의 기억을 연결시키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그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다양한 연작으로 표현한다. 연작 중 하나인 ‘사이에서’는 한국과 일본, 그 경계에 존재하는 재일 교포의 모습을 담는다. 이는 경계에 놓였기에 오히려 정체성과 뿌리를 돌아보게 됐던 김인숙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타국에서 새 삶을 개척하게 된 재일 동포 1세대부터 4세대를 배 속에 품은 3세대 여성의 모습까지. 사진 속에는 일본 가옥을 배경으로 전통 한복을 입은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서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데올로기가 문화로 변해가는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서 코리안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의지가 덤덤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전 세계가 K문화에 주목한 2010년대. K드라마 속 재벌집 풍경으로 단일하게 각인될 뻔한 한국 가족의 모습이 뜻밖의 전환을 맞은 것은 영화 〈기생충〉(2019)의 두 가족 덕분 아닐까. 우아한 취향으로 가득한 층고 높은 집, 사람들을 불러 모을 멋진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두어 개씩 고액 과외를 받는 남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반지하 집에 살을 맞대고 사는 네 식구, 방 한 칸을 공유하는 남매, 일용직을 전전하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로 말이다. 최근 1인 가구나 대안 가족, 동성혼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한국 사회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기생충〉은 여전히 대한민국이라는 빈부 격차의 정글에 단단히 뿌리내린 가족 형태의 단상은 계층 저 끝과 끝에 마주 보고 선 이들이라고 명확히 꼬집는다. 기택(송강호) 가족의 반지하 집 화장실은 2022년 런던 V&A 뮤지엄에서 열린 〈Hallyu! The Korean Wave〉전에 재현됐다.
문지영이 그린 가족 그림 속에 남성은 없다. 문지영은 이 시대 여성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 성실하고 진실하게 가족과 그 안의 여성을 그린다. ‘엄마의 신전’은 장애가 있는 동생을 위해 간절하고 맹렬하게 기도에 매달렸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시작하는 연작이다. ‘엄마의 신전 VI’ 속 서로 닮아 있는 인물은 3대에 걸쳐 문지영 작가의 일가를 일궈온 여성들이다. 언뜻 일상적인 가족사진 같은 구도를 통해 작가는 여성이자 장애인을 보살핀 엄마의 모습으로, 장애와 질병, 노화, 취약한 여성의 삶,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된 돌봄 체제 문제를 꼬집는다. 여전히 소수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정상 가족 중심의 사회구조를 견뎌온 그림 속 3대의 모습은 어쩐지 따뜻하고 여리면서도 강인하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