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김종인도 나선 제3지대…'민주당 대체'가 목표여야 한다 [한지원이 소리내다]
4월 중순 ‘성찰과 모색’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이 신당 창당 의지를 밝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창당을 돕겠다며 힘을 실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무당층이 급증하다 보니 관심이 뜨겁다. 다만, 기대치는 낮아 보인다. 제3지대의 실패사(史)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비관론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신당의 성공을 점친다. 한국의 양당 체제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양당 체제의 토대는 자유주의·보수주의, 진보·보수, 좌파·우파 같은 역사적 이념 대립이다. 이 대립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양쪽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두 정당의 지배력도 유지된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 유럽 대륙의 사회주의와 기독교 계열 정당이 각각의 사례다. 한국의 양당 체제는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통해 보수를 규합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야와 협력해 진보를 대표하면서 만들어졌다.
진보의 가치에서 이탈한 민주당
그런데 문재인 정부 이후 양당 체제의 근본이 흔들렸다. 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이 권력 중심부를 장악한 이후 민주당이 완전히 변해버린 탓이다. ‘문빠’ ‘개딸’로 불리는 홍위병 문화, 소득주도성장이나 기본소득 같은 반(反)경제학 정책, ‘검수완박’으로 상징되는 정파적 사법개혁이 진보를 집어삼켰다. 자유주의의 요체인 다원적 문화, 경제학적 합리성, 법치 원칙 등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위선과 기득권, 반일 캠페인에서 드러난 배타적 민족주의는 진보나 좌파가 가장 혐오했던 것들이다. 국민의힘은 부패했든 무력하든 보수 계보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완전히 이탈했다. 역사적 이념 대립의 정치적 표현이란 양당 체제의 토대도 무너졌다. 현 국회는 과거의 유산에 기반한 사이비 양당 체제일 뿐이다.
22대 총선 전후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첫째 자유주의 또는 진보를 지향하는 신당이 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다. 종종 이런 대체가 실제로 일어난다. 6년 전 프랑스에서는 마크롱의 앙마르슈가 사회당을 대체했다. 둘째 적합한 대변자가 나타나지 않은 채, 정치 혐오를 기반으로 포퓰리즘 정당이 우후죽순 나타날 수 있다. 좌·우파 정당이 붕괴한 이후 전진이탈리아, 오성운동 같은 포퓰리즘 신당이 정치를 지배한 이탈리아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선 첫 번째 시나리오가 바람직하다.
한편, 일부 정치 평론가는 승자독식 소선구제라는 문턱 탓에 제3지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현재 한국의 정치 문화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지난 30년간 형성된 것이다. 한국은 1960~80년대 고도성장 이후 1990~2010년대에 명실상부한 고소득 국가에 진입했다. 구매력 지수로 본 1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일본과 이탈리아를 앞설 정도다. 1990년 냉전 종식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화에 참여하면서 북한의 남침 위험 역시 크게 줄었다. 내전 없이 민주화를 이루고 양당 체제를 구축한 것도 이런 조건 덕분이었다. 양당이 무능해도 어지간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시대였다.
소선거구제가 무능 정당 심판하기 쉬워
하지만 2020년대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인구 절벽과 생산성 정체로 경제가 장기 침체에 진입했다. 일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잃어버릴 30년’이 도래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보도 위협받는다. 중국과 러시아의 퇴행으로 동아시아가 20세기 초 발칸반도처럼 되었다는 분석이 많다. 경제와 안보 위기는 심화하는데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 이전 30년과 향후 30년의 정치 문화가 같을 수 없다는 의미다. 조건이 다르면 정치 문화도 달라진다.
복합적 위기 시대, 정당에 요구되는 덕목은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성’이다. 소선거구제 문턱은 죽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선 오히려 무능한 정당을 심판하는 무기가 된다. 양당의 한쪽을 차지할 이유가 없는데 무능·무용하기까지 하다면,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위기 의식이 커지면 대중은 과거 유산과 더 쉽게 단절한다. 미래가 다급하다. 사실 비례제와 중대선거구제는 진입만큼 잔류도 쉽다. 소선거구제는 신당이 아니라 기존 정당, 특히 민주당의 문턱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당의 성공 열쇠다. 제3지대 같은 틈새시장이 아니라 ‘민주당 대체’라는 역사적 소임을 정체성으로 삼아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가? ‘잃어버릴 30년’의 초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 정당’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경제·안보 위기 해결하는 책임 정당 나와야
원조 제3지대라 할 정의당(또는 민주노동당)의 실패 원인도 저 두 질문과 관련 있다. 진보 정당들은 매사에 보수에 대한 반대를 최상위에 두고 민주당과 협조해 왔다. 민주당 2중대론이 ‘무고’는 아니다. 또한 진보정당들은 세계의 큰 변화를 읽는 데도 실패했다. 예로 저성장·고령화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고성장·인구 증가가 전제인 정책들을 요구하는 식이다. 다당 체제가 양당 체제의 대안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에 매달린 것도 패착이었다. 현대 민주주의 표준이라 할 영국과 미국은 양당 체제-소선거구제로 200년 넘게 정부를 구성했다. 다당 체제-비례선거제로 정부를 구성하는 선진국도 여럿 있지만, 전제는 의원내각제라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다당 체제 조합은 선진국에 없다. 포퓰리즘과 부패의 상징인 남미에서만 그렇게 정부를 구성한다.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문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다. 인구 절벽, 안보 위기, 양극화 심화. 세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제도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신냉전 시대의 한반도 안보는 냉전 시대 이상으로 위태롭다. 지대(rent) 추구와 불공정 경쟁이 야기한 극단적 양극화는 상대적 빈곤층의 증가를 야기하며 사회 존속까지 위협한다.
신당의 성공 여부는 이 문제들을 적절하게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자유주의적 해결책들, 예를 들면,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강화하는 생산적 복지, 민주주의 동맹 같은 가치 기반의 세계 질서, 포퓰리스트로부터 정부를 보호하는 정치 개혁 등은 전문가 사이에서 어느 정도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다만 국민을 설득할 정치적 대변자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민주당 대체라는 역사적 소임과 문제 해결에 관한 책임성을 국민에게 인정받는다면, 금태섭 전 의원이 밝힌 수도권 30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진보의 타락, 민주주의 오작동시키고 성과 허물어
타락한 진보를 대체하지 못하면 국민이 고생한다. 최근 진보에는 ‘타락’이란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타락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진보의 타락은 민주주의를 오작동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이 이를 경제적 정치적 성과까지 허문다.
예로 일본이 장기침체 첫 국면에 진입했을 때 개혁의 책임을 떠안은 세력은 55년 체제에서 진보를 대표한 사회당이었다. 이탈리아가 현재 같은 고부채 늪에 빠진 1980년대에 장기간 집권한 세력도 좌파를 대표한 사회당이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사회당은 문제 해결은커녕 이념적 계보를 상실한 채 총체적 부패로 몸살을 앓았다.
나는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우리나라가 저 두 나라처럼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어떤 징후라고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민주당을 대체할 세력이 성장해야 한다.
한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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