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나의 신앙]원우현(30·끝)오늘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십자가 앞에 나아갈 뿐이다.
뼈대 있는 집안에서 코뼈 수술 후 50년
‘나의 삶 나의 신앙’ 연재가 어느새 30회째다.
되돌아보니 30여 년 연구하며 지내온 명예교수로서나 교회 사역장로로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절박한 문제나 교회의 신학적인 이슈를 쉽게 풀어준 칼럼은 없는 듯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독자들도 왜 그럴까 의아해할지 모른다.
필자는 어떤 고위직을 맡아 국가 사회의 근본 문제를 다루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류의 거대담론을 칼럼의 주제로 다룰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또한 집필을 하는 데 있어서도 챗GPT 같이 묘수를 불이는 듯한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풍부한 자료를 섭렵하고 합리적 절차를 거치면서 어떤 문제든 청원인이 원하는 대로 해결책을 근사하게 제시하는 것 말이다.
시간을 따라잡을 수도, 정보량을 따라잡을 수도 없기에 내놓는 푸념이라기보다 주제가 소박하고 스토리가 단순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큰 교회의 변방에서나 선교지의 개척교회를 통해 주님이 조용히 다가오셔서 들려주신 작은 음성이라도 신실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작고 부족한 인생의 편린 속에 박혀 있는 연단의 흔적이나 소박한 홍보거리라도 생각나면 있는 그대로 긁적여보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소망을 실제로 추구해가는 과정이 내 마음의 평안을 찾는 지름길임을 깨달았다.
마지막 칼럼도 어수선하던 삼청초등학교 6학년 초에 똘망똘망하고 손재간이 많았던 Y와 얽힌 ‘코뼈 수술 후 50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1978년 고려대학교 근무 2년이 지났을 무렵, Y를 우연히 만났다.
마침 우리가 6학년이 되던 바로 그때, 삼청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가 분리됐다.
삼청동 거주 학생은 급작스레 교정도 없어 지금 감사원 자리를 빌려 쓰던 학교로 전학을 강요 당했다.
6학년 담임선생님 대신 교생 선생님이 주는 무한대 자유를 누리면서 중학교 입학 준비를 걱정하던 때를 서로 회상하던 중 필자는 나도 모르게 불쑥 내 코뼈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Y에게 필자는 운곡 원천석 후손으로 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했고, Y도 선대 자랑을 하면서 다투던 기억을 소환했다.
Y는 필자가 “뼈대 있는 집안이란 중심이 잡힌 심성을 갖춘 집안이다. 그 중 코뼈는 얼굴의 바로 중심에 자리 잡고서 줏대가 확실한 남성의 매력을 보여주는 포인트”라고 떠들어 대던 것을 기억한다며 웃었다.
그런데 50년 전 어느 날 필자는 종합병원에서 코뼈가 굽었다는 진단을 들었다.
그러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데 불편하고 비염 증상으로 답답하고 염증이 자주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차일피일 킁킁 대기도 하고 그럭저럭 임시방편으로 넘어가던 중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마쳤다는 Y를 우연히 만났던 것이다.
전문의도 마치고 기민한 손재주의 사나이 Y를 만나자 마자 필자는 코뼈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동안 코뼈를 건드린다는 것이 섬뜩한 느낌이라 잊고 살았다.
그러나 미신처럼 뼈의 완고증으로 인해 뼈대 있는 우리 집안에 누가 되지 말자는 심정으로 즉시 코뼈를 바로 세우는 수술을 Y에게 맡기기로 했다.
필자는 고려대 재직 중이었는데, 그 친구가 근무하는 S병원으로 갔다.
수술실에서 준비하고 집도하기 전 Y는 간단한 수술이니 몇 분만 잘 참으면 된다고 했다.
환자인 내가 통증을 느낄 여유도 없이 Y의사는 집도를 마쳤다.
“수술이 잘 끝났어.”
빙긋이 웃으며 하루만 입원하라고 했다.
다음 날 바로 기분 좋게 퇴원한 게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완벽한 수술을 믿는 믿음으로 누구를 만나든지 뼈대 있는 집안 내력을 내세울 때마다, 필자는 코뼈를 들이대면서 감쪽같이 몇 분 만에 코뼈를 교정한 날쌘 이비인후과 의사 Y원장의 실력을 무턱대고 자랑을 해왔다.
그런데 2022년 가을 보청기를 교정하는 아내를 따라 강남 병원에 갔다.
보청기 교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싶어 무심코 원장에게 필자의 코를 좀 보아 달라고 했다.
강남에서 큰 규모로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의 즉각적이 반응에 필자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원장님이 코를 들여다보더니
“코뼈 수술을 누가 어디서 했습니까. 수술부위에 빈공간인 구멍이 그대로 아물어 지금까지 왔네요. 알고 계십니까. 이건요, 의료사고 수준의 실수를 한 겁니다.”
Y의사를 50년 동안 최고의 코 수술 전문의로 믿고 자랑만 하던 나는 오히려 강남병원 의사들의 장사 속 허세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Y의사를 믿고 끝까지 두둔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귀가해 처방 받은 오큐프록스 연고의 설명서를 보고 직접 전화를 했다.
“강남 이비인후과지요. 어제 보청기를 교정하는 아내를 따라 갔다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은 W환자입니다. 연고 처방을 받고 귀가해서 연고를 열어보니 오큐프록스라는 안연고였습니다.”
원장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50년이 지났으니 어떻겠습니까. 연고나 불편하실 때 바르시고 참고 지내세요.”
필자는 반격이라도 하듯 “그런데 원장님, 코에 바르는 연고를 주셔야지 눈에 바르는 안연고를 처방하셨습니까. 무언가 착각이 있으셨는지 의아해 전화 드린 겁니다.”
여자 의사가 대신 답을 해주었다.
가장 부드러운 게 안연고라서 코에 자극이 가지 않도록 오큐프록스를 코에도 종종 쓴다고 했다.
그간 나는 최고의 코 수술 전문가인 Y가 코뼈를 7분 만에 후다닥 나도 모르게 해치운 묘수를 자랑삼아 홍보를 해왔다.
“손재주가 뛰어난 삼청 초등학교 Y동창이 50여 년 전에 한 수술이다.”
코 얘기가 나오면 콧대를 내세우며 자랑하듯 막힌 코 뚫기 Y의 무용담을 서슴지 않았던 필자였다.
그런데 수술이 실수였다는 원장의 한 마디는 청천벽력 같은 괴담처럼 느껴졌다.
그 원장이 그 수술을 어디서 했으며 의대를 어디서 나왔는지까지 스치며 물어 보는 건 Y의 의료수준을 내려보는 듯한 태도였다.
수술이 의료사고 수준의 실패이든, 완벽한 시술의 표본이든 이제 다시 따지고 들추어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 코 수술을 했던 초등학교 친구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심이나 하자고 만나자 했더니 몇 년 전 상처한 후 후처를 얻고 두문불출 집 밖은 거의 안 나간다고 했다.
나이 80이 넘으니 허리가 고장이 나 어떤 나들이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코 수술 얘기는 한 마디도 못 꺼내고 얼떨결에 전화를 끊고 말았다.
필자는 새벽 기도를 다녀온 후 Y의사의 과실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지나긴 것은 지나간 대로 잊자고 했다.
Y의 과실에 대한 관대한 결심이 대견했다.
그런데 필자 자신도 과거에 같은 종류의 실수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무거웠다.
“교수로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나를 만족시키는 학문만 가르치면서 주관적인 기준으로 상대방을 재단하고 평가하면서 마음의 구멍을 낸 일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반성과 함께 깊은 침묵으로 빠져 들고 말았다.
더욱이 나이가 들수록 깊어가는 듯한 80년 동안의 무익한종, 나 자신의 과오가 나온다면 그걸 어떻게 다 씻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십자가 앞에 나아갈 뿐이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사 43:18~19)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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