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아시아 대표 저작권 마켓으로 키워야”
국내 최대의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주일우(55) 이음 출판사 대표는 올해로 7년째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로 일하고 있다. 내년 ‘부산아동국제도서전’(가칭) 창설 준비도 맡고 있다. 해마다 4∼5차례 해외 도서전 출장을 다니고 국제출판협회 이사로도 활동하는 그는 국내 최고의 도서전 디렉터다.
서울 합정역 인근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주 대표는 지난 달 다녀온 런던국제도서전 얘기부터 꺼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국제도서전이 열리지 못했고 저작권 거래도 온라인으로 다 했다. 그러면서 도서전이 앞으로 필요 없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도서전을 다시 여니까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런던국제도서전도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싶어했구나, 모여서 얼굴 보고 축제처럼 즐기는 게 필요했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주 대표는 2017년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맡은 후로 해외 도서전을 계속 드나들고 있다. “1월 대만, 3월 볼로냐(이탈리아), 4월 런던(영국), 8월 베이징(중국), 10월 프랑크푸르트(독일), 11월 말이나 12월 초 과달라하라(멕시코), 이렇게 다섯 개 정도가 해마다 가는 해외 도서전이다. 그 외에 한국이 주빈국이 되는 도서전에도 간다.”
주 대표는 해외 도서전에서 한국 참가사들을 위한 한국관을 운영하고 주빈국 행사를 주관한다. 주빈국이란 도서전에서 초청하는 국가로 주빈국이 되면 도서전 중심부에 주빈국관을 설치해 그 나라의 출판과 문화를 소개한다. 지난해 4월 열린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이 한국이었고, 그로부터 두 달 후 열린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은 콜롬비아를 주빈국으로 초청했다. 주빈국 행사는 양국의 문화 교류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서전은 세계 출판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주 대표는 각국의 도서전 디렉터들을 만나 흐름을 파악하고 국제출판협회 회의에 참석한다. 또 한국 출판계와 새로 교류할 국가들을 모색한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샤르자를 주빈국으로 초청했다.
주 대표는 “7개의 부족 연방국가로 이뤄진 아랍에미리트에서 샤르자는 아부다비, 두바이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면서 “샤르자는 석유경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문화산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미술 비엔날레가 이미 유명하고 출판 분야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도서청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도서전이 열리고 있지만 봄의 런던도서전과 가을의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가장 크다. 아동도서전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이 중심이다. 모두 유럽 도서전이고, 저작권 거래가 중심이 되는 도서전이다.
주 대표는 “국제도서전은 책 축제와 저작권 거래 시장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서울국제도서전은 축제로서의 성격은 훌륭해졌지만 저작권 거래 시장으로서는 아직 위상이 낮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서울국제도서전을 아시아를 대표하는 저작권 마켓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출판사들의 책 파는 행사 정도로 여겨지던 서울국제도서전을 독자와 작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책 축제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전에서도 책 할인 판매가 불가능해지면서 서울국제도서전은 위기를 맞는 듯 했다. 하지만 주 대표는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행사를 대폭 늘리고 도서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에디션 도서와 굿즈 제공, 작은 출판사·서점 초청, 전시 등을 통해 도서전을 문화 축제로 개편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1만원짜리 티켓을 사야 들어갈 수 있지만 평일에도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됐다. 평균 20만여명이 다녀가는데 20·30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주 대표는 여기서 또 한 번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아무래도 중국 출판시장이 제일 크다. 하지만 중국은 출판을 정부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어 매력적인 출판물이 드물다. 일본은 몇 년 전에 국제도서전을 중단했다. 대만도서전이 꽤 활성화된 편인데 중국과의 갈등으로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정부가 주도해 도서전을 키우려고 하지만 출판 발전이 더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아시아에서 한국 말고는 출판과 관련된 거래 시장을 제대로 열 수 있는 데가 없다. 때마침 세계적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 출판물에 대한 외국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출판사들의 판권 수출은 지난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주 대표는 “지난 2월 잘 아는 독일 칼센 출판사 사장이 한국에 왔는데, 1주일 동안 16개 출판사를 만나고 갔다. 런던도서전에서 만난 이탈리아출판협회장은 한국어 문법책을 냈는데 엄청 잘 팔린다고 하더라. 포르투갈의 한 출판사 대표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내고 싶다며 문의해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는 해외 업체는 30여개국 200곳이 넘는다. 역대 가장 많은 수치다. 세계 최대 저작권 마켓인 프랑크푸르트도서전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베이징도서전이나 대만도서전을 넘어서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대표는 “한국 콘텐츠의 힘이 커지면서 출판 저작권을 사러 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면서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해서 빨리 저작권 거래 시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에 국제적인 저작권 마켓이 형성되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 중동 등이 유럽 대신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내년에는 또 하나의 국제도서전이 생길 예정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부산시는 내년 11월 첫 개최를 목표로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주 대표가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아쉬운 점은 행사가 성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미래의 독자들을 고려한 행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거나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 그리고 어린 독자들과 부모들 모두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아동·그림책들이 국제적인 상들을 잇달아 수상하면서 정부의 관심도 커졌다.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도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설립을 지원하고 나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올 초 볼로냐아동도서전을 견학하고 왔다.
주 대표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 생긴다면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비롯해 만화나 교육 콘텐츠, 인터렉티브 콘텐츠 등을 해외에서 어떻게 사가게 할까 고민해야 한다”면서 “아동도서 저작권 거래 시장을 한국으로 끌고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출판 콘텐츠가 드라마나, 영화 등 다른 미디어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부산에는 부산영화제도 있고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G-STAR)’도 열리고 있어 출판과 다른 미디어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국제도서전은 1954년 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행사이자 국제적으로 한국 출판을 대표하는 행사다. 올해는 ‘비인간’을 주제로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열린다. 올해 국내 참가사는 360곳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수준을 회복했다. 주 대표는 “올해는 참가사를 다 못받을 정도로 신청이 몰렸다”면서 “출판사들이 지난해 3년 만에 다시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지난 30여년간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려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코엑스에서 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엑스 측에서 내년 서울도서전의 공간 축소와 시기 변경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대표는 “서울도서전이 장기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저작권 마켓으로 성장하려면 시기와 공간 정도는 확보돼야 하는데 불안정성이 커졌다”면서 “코엑스 외에 도서전을 할 만한 공간을 서울에서 달리 구하기 어려워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나 볼로냐도서전의 경우, 해당 도시가 탄탄한 베이스가 돼주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서울도서전이 그동안의 성공을 바탕으로 큰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장소조차 확보할 수 없다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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