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재등장, '최초 발의' 생활동반자법... 뒷얘기가 있습니다

홍순영 2023. 5. 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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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외롭지 않을 권리'"... 용혜인 의원, 혈연 뛰어넘는 다양한 가족 인정 촉구한 이유

글쓴이 홍순영씨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 비서관이며, 법안 작성에 참여했습니다. <편집자말>

[홍순영 기자]

     
4월 26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10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역대 국회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이날 발의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은 성년이 된 두 사람이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고 부양하는 관계를 '생활동반자관계'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일상가사, 돌봄, 복지, 장례 등 생애 전 과정에서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다.

2014년 처음 생활동반자법 논의가 국회에 처음 등장한 지 9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국회에서 새로운 가족제도를 향한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용 의원은 "국가에 의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받고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은 더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국민의 '외롭지 않을 권리',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회가 큰 걸음을 떼어 나아갈 때"라고 말했다.

"역대 국회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합니다"
 
 4월 2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당시 기자회견 모습.
ⓒ 용혜인 의원 페이스북
 
내가 '생활동반자제도'란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 시절, 한 강의에서였다. 교수님은 "어떠한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자 하나요?"라는 의미심장한 질문과 함께 해외의 다양한 파트너 등록제도와 당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던 '생활동반자법'을 소개했다. 당시 비혼을 고집했던 나는 '어쩌면 혼자도, 결혼도 아닌 또 다른 선택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에게 '결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이 사회에서 '영원한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결합을 상상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면접에서 '결혼', '남자친구', '출산'에 대해 서슴없이 질문받고, '임출육'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여성에게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혼 남성은 36.9%, 미혼 여성은 22.1%에 불과하다. 혼인율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과거 보편적으로 여겨졌던 부부+미혼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구는 더이상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대신 1인가구가 폭증했다. 전체 가구 중 33.4%에 달한다는 1인가구 통계 속에는 친구 가족, 동거 커플, 비혼공동체 등 다채로운 시민의 결합이 숨겨져있다. 혼인과 혈연을 뛰어넘는 다양한 방식의 유대관계는 이제 도래한 현실이 되었다.

가족의 위기가 아닌 '가족법'의 위기

폭증하는 1인가구, 줄어드는 혼인율, 유례없는 최하위의 출생률을 목도하며 많은 이들이 가족해체와 국가 소멸을 걱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건 전통적 가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누군가에겐 아예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계와 돌봄을 함께하는 가족임에도, '법 테두리 바깥'이라는 이유로 어떤 가족들은 권리를 박탈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응급상황에서 동반자의 수술 동의서에 법적 가족 대신 서명할 수도 없고, 당장 함께 살 집을 구하거나 공동으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가족구성원 중 누군가 출산하거나 크게 아플 때 휴직을 받을 수도 없으며, 여생을 서로 돌보며 함께하는 이의 상주로서 장례를 치를 수도 없다.

한편, 혈연관계를 중심에 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긴다. 원가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다양한 사회제도에서 배제되고, 고립되어 삶의 기반이 위태로워진다.

가족의 위기인 것이 아니라, 격변하는 사회에서 75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가족법', 그리고 '정상가족' 중심으로 짜인 사회 제도야말로 위기의 한 원인인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결합이 실존하는 가운데, 특정한 '정상 가족' 외의 시민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지금의 가족제도는 국민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유대를 국가가 인정하고 지원하며, 가족의 의미를 새로 쓰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기본소득당 베이직페미 '사회적가족합의전'
ⓒ 기본소득당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상상력... 그 상상 현실로 만들 '생활동반자법'

1년 반 전쯤인 2021년 12월 24일, 기본소득당 당내 여성주의 의제기구인 '베이직페미'는 생활동반자제도가 도입된 대한민국을 마음껏 상상해보는 전시를 열었다.

전시관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사람과 구청에 생활동반자 신고를 할 수 있었고, 생활동반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 상품들도 등장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활동반자가 장례식에서 상주를 맡는 일도 이 전시에선 현실이 될 수 있었다. 2023년 4월, 이제 생활동반자제도가 도입된 사회를 상상을 넘어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직접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용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은 성년이 된 국민, 혹은 영주권자라면 누구든 생활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는 사람은 친구일 수도 있고,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일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가족제도에 배제되었던 동성 커플일 수도 있고, 혼인으로 엮이고 싶지 않지만 여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은 노인일 수도 있다.

생활동반자와 법률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과 개인의 결합에 중점을 둔 생활동반자 관계는 그동안 획일적이고 경직되었던 가족을 넘어서 다양한 관계맺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 속에서 가족 구성원은 기존 가족 내의 성 역할을 답습하지 않아도 되고, 돌봄과 생활 역시 평등하게 분배될 가능성이 열린다.

또한, 관계의 해소 역시 법률혼에 비해 쉽다. 기존의 가족에 비해 느슨한 연대로 이루어지는 생활동반자제도가 도입된다면, 누구나 부담 없이 적극적으로 함께 사는 것의 행복,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생활동반자라면 기존의 가족에게 부여되었던 권리와 혜택 역시 보장될 수 있도록 25개의 법을 개정하는 부칙을 담았다. 본 법률안에 따르면 생활동반자는 법률혼과 같이 상대자의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할 수도 있고, 공동으로 자녀를 입양할 수 있다.

법안에 따르면 이들은 서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에 따른 연금 수급자가 될 수 있고,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가 출산을 하거나 돌봄이 필요할 때, 출산휴가와 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신규 생활동반자관계 역시 신혼부부와 같이 주거지원 정책을 누릴 수 있다.
  
21대 국회 생활동반자법, 발의 넘어 통과를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초안)을 만들고 9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의 지평은 매우 많이 변화했다. 이제 국민 10명 중 7명은 혈연이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다수 후보들이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공약했고, 지난 2월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밝히기도 했다(관련 기사: 박홍근 "위기의 대한민국, 문제는 대통령" https://omn.kr/22po6 ).

용 의원은 과거 차별금지법, 평등법을 발의했던 의원들에게 직접 친전을 보내고,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연락하고 만나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법안을 둘러싼 보수 세력의 반대 등 여론의 부담을 느끼는 의원들도 있었지만, 당을 불문하고 많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생활동반자법 취지에 공감했다.

모든 국민의 '외롭지 않을 권리',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위해 우리 국회가 큰 발걸음을 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절실한 마음으로 4개 정당 11명 의원들이 공동발의에 동참했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가족 다양성, 그리고 이제는 시효를 다한 소위 '정상가족' 중심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국회가 커다란 결심을 한 것이다.

21대 국회가 생활동반자법 발의에 멈추지 않고, 제정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함께 뚜벅뚜벅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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