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방한 종일 속보로 전한 日…"양국 정상, 미래 지향 뜻 모아"

이영희, 조수진 2023. 5. 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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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들은 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방한 소식을 하루 종일 속보로 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방한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기시다 총리의 강력한 의지로 이뤄졌다면서 "12년 만에 '셔틀 외교'가 복원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본 언론들은 이날 정상회담에 대해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는 북한에 대응해 억지력과 대처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으며 양국 기업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대해서도 연대 강화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또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평가했다. 민영방송 니혼테레비는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역사 문제 해결보다 미래에 대한 협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뜻을 표명했다"면서 "한국 국내에서 일본에 너무 양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윤 대통령이 관계 개선에 더욱 강한 의욕을 보인 모양새"라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데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지지통신은 "기시다 총리가 당시 엄혹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이 괴로움과 아픔을 겪은 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는 뜻을 표명했다"면서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사죄 등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마음이 아프다” 표명과 관련 “지금까지는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만 했다”며 “이 같은 심도 있는 발언의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신문은 단 “정부 입장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한 표현”이라며 “총리 개인의 생각으로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 한국에 다가서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일본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이번 방한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직접 사죄와 반성을 언급하지 않고 "1998년 10월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만 표현했다. 아사히 신문은 앞서 7일자에서 기시다 총리가 이번 회담에서 반성이나 사죄 대신 "안보나 경제에서의 한·일 관계 개선에 따른 이점을 다시 한번 어필함으로써 한국 여론의 이해를 얻자는 생각"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사죄'와 '반성'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가슴 아프다"는 표현으로 피해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의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일 정상이 강제 징용 문제 등 한·일이 안고 있는 과제를 마주 보고 관계 개선을 진행해 나가는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오염수" 대신 "알프스 처리수"


이날 두 정상은 회견에서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해양 방출과 관련해 한국 전문가 시찰단을 현지에 파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오염수'라는 표현 대신 '알프스 처리수'라는 일본 내 용어를 사용했다.

기시다 총리는 회견에서 "일·한 양국 사이에 지속적으로 성의 있는 소통을 희망하는 분야 중 하나가 '알프스 처리수'"라며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리뷰를 바탕으로 높은 투명성을 갖고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성의 있는 설명을 해 나갈 생각이지만, 한국 국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은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프스 처리수'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부르는 일본식 표현이다. 알프스는 '다핵종(多核種) 제거설비'(ALPS)'를 뜻하는 말로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오염수를 알프스에 통과시켜 주요 방사능 물질 등을 제거한 후 보관하고 있다. 한국에선 오염수로 표현하지만 일본 정부와 대다수 언론은 '알프스 처리를 거쳐 정화된 물'이라는 의미로 '알프스 처리수' 용어를 쓴다.

앞서 기시다 총리와 부인 유코 여사는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정부 전용기를 타고 도쿄(東京)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한국에 도착했다.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은 2018년 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문한 후 5년 3개월 만이다. 양국 정상 셔틀 외교 차원에서의 총리 방한은 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총리의 서울 방문이 마지막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출국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번 회담에서 "신뢰 관계에 근거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조기 방한 고집"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일본 측이 먼저 한국에 타진해 이뤄졌다. 일본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바탕으로 한·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전날 산케이신문도 기시다 총리가 조기 방한을 고집해 올해 여름쯤으로 예상돼왔던 한국 방문이 앞당겨졌다고 보도했다. "한국 내 여론과 야당의 반발에도 한·일 관계 복원에 나선 윤 대통령의 결단에 호응하려는 게 기시다 총리의 의도"라고 산케이는 분석했다.

총리의 조기 방문이 미국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사히는 오는 19일부터 히로시마(広島)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라며 "주최국인 일본으로서는 안보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 정상이 어떤 협의를 했는지 미리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고 전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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