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슬픈 경험 가슴 아파"…대통령실 "사전 조율 발언 아니다"

정진우, 조수진 2023. 5. 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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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7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양국이 미래 협력 관계로 나아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사진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7일 한ㆍ일 정상회담을 연 뒤 과거사 피해자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날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저도 당시에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수년간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를 ‘구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표현하며 강제징용 사실 자체를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던 점과 비교하면 기시다 총리의 이날 발언은 과거사 문제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기시다 총리는 이 발언에 대해 “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1998년 10월 한ㆍ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이같은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본 내에선 당초 기시다 총리가 방한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직접 사죄와 반성을 언급하지 않고 “1998년 10월 발표한 한ㆍ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만 표현했다. 아사히 신문은 7일자에서 기시다 총리가 이번 회담에서 반성이나 사죄 대신 “안보나 경제에서의 한ㆍ일 관계 개선에 따른 이점을 다시 한번 어필함으로써 한국 여론의 이해를 얻자는 생각”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이날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로 우회적으로 피해자를 지칭하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해 지난 3월 보다 진전된 발언을 내놨다. 이 발언은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회담 전에 한ㆍ일 양국의 참모진들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협의하거나 사전에 조율한 적은 없다”며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올 때 나름대로 생각한 본인의 인식에 대한 발언을 직전에 준비했다가 자발적으로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일본은 ‘느린 국가’로 평가받는다. 내각 차원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신중을 거듭하고, 특히 상대국이 있는 외교에선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외교 방식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이었던 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반대를 뚫고 한ㆍ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다. 하지만 한국의 정권 교체로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무효화됐고, 이후 한ㆍ일 관계는 급속하게 악화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계속된 해결 노력에도 일본의 호응 조치가 더뎠던 이유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이날 메시지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하면서 간접적으로 사죄의 메시지를 낸 것으로 좀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가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비유적으로 보면 ‘남은 반 잔’을 채우진 못했지만, 그를 위한 프로세스로 돌입한 측면은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고 참배하기로 뜻을 모은 것 역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연장선에 있는 일정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저의 히로시마 방문 계기에 우리 두 정상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참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히로시마 평화 공원을 윤 대통령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것은 기시다 총리가 제안해 온 것”이라며 “앞으로도 말과 행동으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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