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봉준호도 떠올렸다…영화인들 몰려간 강수연 1주기

남수현 2023. 5. 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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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강수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에서 배우 박중훈, 안성기가 추모인사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리 수연씨가 이 자리엔 없지만, 어디에서든지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배우 안성기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강수연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고인의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에서다.

한국영화계 ‘최초 월드스타’로 불렸던 배우 강수연은 꼭 1년 전, 뇌출혈로 인한 심정지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향년 56세.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10년만의 복귀를 앞둔 상황에서 날아든 벼락같은 비보였다. 이날 개막식에는 강수연과 작품을 함께한 배우 안성기·박중훈을 비롯해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임순례·배창호·윤제균·이장호 감독,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홍정인 메가박스 대표이사 등 수많은 문화·영화계 인사들이 자리해 고인을 추억했다.

배우 유지태가 사회를 맡은 이날 개막식은 강수연이 안성기와 주연한 로맨스 영화 ‘그대 안의 블루’(1992)의 동명 주제곡을 가수 김현철, 배우 공성하가 함께 꾸민 특별무대로 막이 올랐다. 김현철이 작곡하고 이현승 감독이 작사한 이 듀엣곡은 영화만큼이나 사랑을 받은 노래. 김현철은 무대를 마친 뒤 “강수연님이 여기 어딘가에 앉아 계실 것만 같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강수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에서 가수 김현철과 배우 공성하가 고인의 주연작 '그대 안의 블루'의 동명 주제곡으로 듀엣 무대를 꾸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날 참석한 여러 영화인들은 각자 기억하는 강수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를 추모했다. 고인과 3편의 영화를 함께 찍은 배우 박중훈은 “강수연은 내가 직접 본 사람 중 외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동시에 실제 생활에선 검소하며, 어려운 곳에는 선뜻 마음을 쓰는 통 큰 사람이었다”며 ““(그가 떠난 지) 1년이 됐는데도 슬픔이 잘 가시지 않는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영원히 기억하고, 가슴에 담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상을 통해 그를 추억한 후배 배우들의 말에서도 고인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배우 문소리는 “언니는 (배우라는 직업에) 굉장히 큰 책임감을 갖고 임했던 것 같다. 어려운 순간도 많았을 텐데, 절대 약한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돌이켰고, 최희서는 “배우는 죽을 때까지 최고를 향해서 갈 뿐이야.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 해”라는 생전 고인의 말을 전하며 “그 말이 사무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정우성·이정재·이정현·김아중 등의 후배 배우들이 영상을 통해 추모 인사를 전했다.

7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강수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에서 고인의 동생 강수경씨는 "영화인들이 만들어준 이 자리는 언니에게도 특별한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족 대표로 무대에 오른 동생 강수경씨는 “이번 추모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영화인들인 여러분이 만들어준 자리”라며 “우리 가족뿐 아니라 언니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남을 것 같다”고 추모전을 기획한 추진위원회에 감사를 표했다.

이번 1주기 추모전은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이사장, 배우 박중훈·예지원 등 영화인 29명으로 구성된 ‘강수연 추모사업 추진위원회’의 주최로 마련됐다. 추진위가 추모전과 더불어 그의 생전 사진과 영화계 동료들의 추모글로 구성한 추모집 『강수연』도 이날 발간됐다.

313쪽 분량의 추모집에는 영화감독·평론가 정성일이 강수연의 위상을 되새기며 쓴 에세이 겸 배우론을 시작으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설경구·김현주의 손편지, 소설가 정세랑의 추도사 등이 고인의 영화 여정을 기록한 사진 수십여장과 함께 수록됐다. 봉 감독은 자필 편지에서 “어쩌면 그토록 갑자기, 서둘러, 바쁘게 떠나신 건가요? 나중에 다시 뵙게 되면 꼭 한번 따져 묻고 싶네요. (...) 누님은 늘 영화였어요”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책에는 “강수연은 영리한 배우였다”는 임권택 감독의 추모사도 실렸다. 강수연은 1989년 임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강수연) 서구 심사위원들로부터 여우주연상을 낙점받았다. 이 영화의 비구니 역을 위해 그는 삭발 투혼은 물론, 촬영 6개월 전부터 절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촬영 당시 쓴 일기에서 발췌한 “지금부터는 철저한 비구니이고 싶다. 모든 것을 잊고서 청화 스님이 되어보자”는 다짐 등 추모집 곳곳에 실린 고인의 생전 문장에서는 영화를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추모전은 강수연의 대표작 상영과 함께 배우‧감독이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GV) 행사가 진행된다. 6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달빛 길어올리기’가 상영됐고, 이날부터 9일까지 메가박스 성수에서 ‘경마장 가는 길’ ‘씨받이’ ‘주리’(이상 7일) ‘그대 안의 블루’ ‘정이’(이상 8일) ‘송어’ ‘아제아제 바라아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이상 9일)가 상영된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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