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하다 '유죄' 받은 활동가, 그 판결 동의할 수 없는 이유
이상현 활동가와 녹색당 활동가들은 2021년 10월 포스코 국제회의장에서 포스코를 비롯한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150만원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상현 활동가는 포스코의 기후위기 책임을 고발한 직접행동에 대한 유죄 판결에 불복하여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4월 18일~5월 2일 15일동안 노역을 수행했습니다. 이에 기후재판 시민불복종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기후정의와 시민불복종·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김은정 기자]
▲ ▲ 이상현 활동가와 연대하는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의 김은정 대표 직접행동 ▲ 이상현 활동가와 연대하는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의 김은정 대표 직접행동 |
ⓒ 포스코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 |
지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끓고 있고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자비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눈 앞의 현실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생명뿐 아니라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있다.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가해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성장을 이유로, 막대한 초과이윤에 혈안이 된 거대 자본과 이에 젖줄을 대주는 국가는 독점적으로 에너지를 뽑아쓰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같은 피해자인양, 때로는 해결자인양 위장한 얼굴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때에 가해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은 그저 범죄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약 10%를 이미 뿜어대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거기에 한 술 더 떠 신규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는 포스코 그룹. 지구가열에 적지않은 책임이 있음에도 'Green Tomorrow, With POSCO'라는 그럴싸한 슬로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수소환원제출 기술을 앞세워 해결자인양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모두가 기후재앙 위험에 마주한 절대절명의 절박함 속, 기업의 이런 위장환경주의와 생명을 담보로 한 이윤주의를 멈추게 하려는 직접 행동은 군말이 필요없는 '당위'에 가깝다.
▲ 4월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이상현씨의 포스코 기후재판 벌금 불복종 노역 입소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
ⓒ 포스코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 |
이상현씨를 비롯한 4명의 녹색당 활동가는 지난 2021년 포스코 행사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시위내용은 포스코의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과 그린워싱, 이를 비호하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의 안이함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시작과 함께 몇 분여만에 주최 측에 의해 제지당한 이들 활동가는, 이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 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부는 주장의 타당성과 목적의 정당성을 들어 검찰 구형보다 적은 형량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기후위기 문제를 정당한 것으로 판시한 점은 한국 기후재판사에 의미있는 평가일 수 있겠지만, 결론만 놓고 보자면 재판부는 결국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죄있음'을 결정한 것이다.
재판부가 행동의 '수단'을 핑계삼고 벌금을 깍아주는 것으로 생색을 낼 요량이었다면 그건 착각이다. 세계의 기후재판들에 비교할 때 이런 판시는 이미 후진적이라 할 수 있으며, 싸우는 사람들은 이런 알량한 감형에 불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수단'을 나무랐지만 저항하는 사람은 '그 수단'이 바로 '재갈'임을 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진 몸뚱아리로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차별에 저항하는 의미로 몸과 자기의 마음을 함께 하고 일치시키는" 저항의 몸짓이 바로 단식, 노숙과 같은 온 몸을 던지는 싸움이라고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한겨레21> 인터뷰 중 말한 바 있다(2022.4.12.).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른바 '합법적' 싸움을 해 왔지만 "몸을 던지고 부숴 사회를 '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저항의 방법이었다는 박 대표의 말은 고스란히 우리사회 불평등 현장 곳곳에서 지배카르텔에 맞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에 맞서 싸우는 기후활동가들의 이야기 그대로다.
이상현 활동가는 그렇게 감형에 불복해 벌금형을 거부하고 스스로 몸을 묶었다.
우리는 왜 법원의 판결에 동의할 수 없는가
활동가들에게 씌어진 범법 내용은 '공동주거 침입'과 '업무방해죄'다. 사적 권리 영역인 공동주거 침입과 업무방해,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굳이 저울질 한다면 어느 곳으로 저울추가 쏠려야 할까? 공공성과 공익을 우선으로 둬야 한다는 것은 제도교육 내내 상식에 가깝게 배워온 터라 한 기업의, 그것도 범죄 혐의가 매우 강한 기업의 행사가 공익보다 우선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거꾸로 우리사회 법은 '공익' '공공'을 우선시하며 개인의 재산을 강제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토지강제수용은 실제 삶터를 조각내고 목숨같은 땅을 빼앗아 농민들을 난민으로 만든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 폭력이 이런 경우는 공익을 내세운다. 우리사회 법은 때로는 공익보다 사적영역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급급하고, 때로는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권리를 전체에 귀속시키는 폭력을 일삼는다. 분명한 것은 국가나 법이 보호하는 사적영역(개인)과 '공공' 또는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우선시하는 것 모두 우리사회 지배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자본이다. 필요에 따라 가져다 쓰는 '양아치 법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법원 판결에 동의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하는 후진성 때문이다. 지난 3월 유엔총회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개별 국가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권고적 의견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같은 결정은 향후 더 많아질 기후소송에서 각국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결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는 이미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국가(정부)와 기업을 피고인으로 지목하고 분명한 처벌과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 법원은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억제 약속 불이행에 유죄 판결을 내렸고 나아가 환경단체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인정해 상징적 의미로 1유로(약 1340원)씩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온실가스를 배출 기업인 빅오일을 상대로 한 재판도 증가하고 있다.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등 7개 환경·인권단체들이 1만7000명의 시민과 함께 글로벌 거대 정유회사인 로열더치쉘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4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나아가 네덜란드 법원은 쉘에 대해 "기업이 이윤 획득 과정에서 인권과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이는 기업의 이익보다 앞선다"고 '주의의무 위반'을 판결했다.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환경주의)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도 있다. 프랑스는 그린워싱 유죄시, 허위 홍보캠페인 비용의 80%까지 벌금을 부과하거나 언론이나 광고판에 시정조치를 요구하거나, 회사 웹사이트에 30일 간 해명자료를 싣도록 하는 법을 마련했다.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빛좋은 논리를 핑계삼아 기후정의를 위한 직접 행동에 족쇄를 채우려는 법원의 판결은 애당초 틀렸다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주범격인 기업의 범죄를 먼저 묻고, 기후재난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망각한 정부를 압박하며, 여전히 기업의 눈치를 보며 절박한 상황을 강제할 전향적 법 제정에 게으른 국회를 질책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향후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두산중공업 재판에서, 가덕도 신공항건설 반대 민주당사 재판에서 수많은 '이상현들'의 연대가 "몸을 던지고 부숴 사회를 '감각'하게 만들" 것이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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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은정씨는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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