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대관식에 다윗과 솔로몬이 보인다

신상목 2023. 5. 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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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찰스 3세(왼쪽)와 카밀라 왕비가 각각 왕관 수여식을 마치고 왕좌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70년 만에 치러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은 1000여년 전통을 유지한 가운데 경건하면서도 화려하게 치러졌다. 대관식은 영국성공회의 전례에 따라 철저하게 기독교식으로 열렸다.

대관식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왕들의 취임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름부음, 면류관(왕관), 나팔(트럼펫), 보좌(왕좌), 허리의 칼, 율법책(성경)과 홀(십자가와 비둘기 왕홀), 언약(서약), 신하들의 하례 그리고 백성들의 만세 등이다.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은 사무엘서과 열왕기서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왕의 취임식은 먼저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으로 시작한다.(삼상 10:1)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맞추면서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았다”고 선포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섭리를 수행할 사역자로 부름받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민 4:3~4; 18:8)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 기름 부음이 이뤄졌다.

그런 다음 왕관을 씌우고(왕하 11:12) 나팔을 불어 천하에 새 왕이 등극했음을 알렸다.(삼하 15:10) 왕은 권력의 핵심인 보좌에 앉았다. 이때 왕은 허리에 칼을 찼다.(시 45:3) 칼은 왕의 영화와 위엄을 상징한다. 손에는 율법책과 규(홀)를 가졌다.(민 24:17; 왕하 11:12)

왕은 여호와 앞에서 백성과 군신의 언약을 체결하고(삼하 5:3),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으며(삼상 10:1), 백성들이 만세를 불렀다.(삼상 10:24) 왕은 이후 하나님께 나아가 희생제사를 드리고(삼상 11:15) 큰 잔치를 베풀었다. 공식 행사 이후에는 시위병들의 호위를 받게 되며 왕궁에서 생활하게 된다.(대하 7:11)

이스라엘에서는 사무엘 선지자 때 처음 왕정 제도가 시작됐다. 그전까지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 정치를 유지했었다. 그러다 가나안 정복 후 사사들이 나라를 통치하게 되고(삿 12:11), 사사들과 그 가족들의 범죄와 허물로(삼상 8:1, 3), 사람들이 각자 소견대로 행동하게 되고(삿 21:25) 또 이방 세력들의 침략이 빈번하게 되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왕을 요구하게 된다.(삼상 8:4~22) 이는 하나님 중심의 신정 체제에 대한 불신이자 힘에 의존하려는 인간들의 요구였다. 이에 하나님은 왕을 선택하여 그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시고(삼상 10:1) 성령의 감동을 덧입히시어(삼상 11:6) 당신 앞에서 왕으로 세우셨다.(삼상 11:15)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왕관을 쓰고 양손에 홀을 든 채 에드워드 의자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찰스 3세 역시 이스라엘 왕과 거의 흡사한 절차로 대관식을 치렀다. 먼저 성경에 손을 얹고 서약(The oath)했다. 서약문은 “율법으로 세워진 교회와 유지하겠다고 맹세할 정착지, 그리고 복음의 진정한 종사에 전념함으로 모든 신앙과 믿음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진 성유의식(The anointing)에서 예복을 벗고 대관식 의자에 앉아 성유를 받았다.

찰스 3세는 1300년 제작된 성 에드워드 대관식 의자에 앉아 양손에 십자가 왕홀과 비둘기 왕홀을 쥔 채 2.2㎏ 무게의 왕관을 썼다. 대주교가 성 에드워드 왕관을 왕의 머리 위에 씌웠을 때 트럼펫과 팀파니가 울렸다. 찰스 3세는 이어 왕의 보좌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대관식 마지막 순서는 즉위(The enthronement)로 왕위에 오르는 순간이다. 전통적으로 고위 왕족과 귀족이 새 국왕 앞에 무릎을 꿇고 오른손에 입맞춤으로 충성과 경의를 표한다. 이번 대관식엔 윌리엄 왕자만이 유일한 왕실 일원으로 나와 부친의 손을 잡고 충성과 믿음, 진리를 위한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국왕 부부는 왕좌에서 내려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버킹엄 궁전으로 향하는 행렬에 합류했다.

대관식은 수 세기에 걸친 전통을 바탕으로 고대 문헌과 의식적 요소를 기초로 했다. 대관식은 예배 양식에 따라 진행됐지만 과거 전통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7일 영국성공회에 따르면 캔터베리 대주교는 대관식 때마다 새로운 전례를 승인한다.

영국성공회의 수장인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이번 전례에서 기독교 가르침의 중심인 타인에 대한 사랑의 봉사와 현대 군주제의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성공회 측은 밝혔다. 전례에는 대주교가 위임한 주석이 수반되며 여기에는 예배의 핵심 요소에 대한 기독교적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대관식은 찰스 3세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해 착석한 후 왕립 합창단의 어린 단원이 왕을 환영하는 인사말에 이어 찰스 3세의 화답으로 시작됐다. 찰스 3세는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본보기로, 나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왔다”(In his name, after his example, I come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고 답했다. 이는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일컬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말씀의 반복이었다.

이어 ‘키리에 엘레이손’ 기도 순서가 이어졌다. 키리에 엘레이손은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이라는 뜻으로 1600년 전부터 성만찬의 시작을 알리는 기도로 사용됐다. 기도는 로마서 3장 23절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어떤 인간도 행동과 생각, 관계가 완전하지 않아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고백이다.

저스틴 웰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가 6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왕관을 씌우기 직전 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관식은 승인(Recognition) 서약(Oath), 성유의식(Anointing), 왕관 수여식(Investiture), 즉위(Enthronement) 등 순서로 진행됐다.

왕에게 바쳐진 첫 번째 선물은 성경이었다. ‘성경 제시’(The Presentation of the Bible)에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이 주는 것들 중 여기 신성한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이 국왕의 법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생생한 오라클(신탁)입니다.”

이어 왕은 “영국 교회가 모든 신앙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서약했다.

‘왕의 기도’(The King’s Prayer)는 이번 대관식에서 처음으로 포함된 식순이었다. 찰스 3세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라 섬기라고 보내셨으니 은혜를 주셔서 내가 당신의 봉사에서 완전한 자유를 발견하고 그 자유 안에서 당신의 진리를 알게 하소서. 우리는 함께 온유의 길을 발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의 길로 인도될 것입니다. 아멘” 하고 기도했다. 섬김의 주제를 반영하면서 갈라디아서 5장과 잠언 3장 17절(all her paths are peace)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어진 찬송에는 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윌리엄 비어드(1540~1623)가 작곡한 ‘글로리아’를 제창했다. 찬송은 누가복음 2장 14절에 나오는 천사들의 노래를 기반으로 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신약성경 바울 서신서(Epistle)인 골로새서 1장 9~17절을 봉독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모든 힘으로 강건해지도록”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최상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음서 낭독은 누가복음 4장 16~21절이 선포됐다. 본문은 예수님이 나사렛의 회당에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이다.

저스틴 웰비(오른쪽)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가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대관식에서 설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 왕이시지만 십자가와 가시 면류관을 쓰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권리를 제쳐 두는 겸손함을 지니셨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섬겨줄 왕에게 왕관을 씌운다”고 말했다.

이어 “섬김이란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다. 우리가 가장 연약한 이들을 돌볼 때, 젊은이들을 양육하고 격려할 때, 자연을 보전할 때 행동하는 사랑이 나타난다. 우리는 국왕이 가진 의무와 삶 속에서 이런 섬김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고 덧붙였다.

대주교의 축복에는 시편 45편 7절과 시편 90편 17절, 베드로후서 1장 11절에 대한 언급이 포함됐다. 정의와 위엄의 상징인 칼이 제시될 때 찬양단은 왕을 위한 기도인 시편 71편을 찬미했다. 왕의 겉옷은 이사야서 61장 10절과 관련이 있으며 십자가가 달린 원형 지구 보구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세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을 참조했다. 홀과 지팡이는 예수께서 세례 때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처럼 성령께서 왕에게 기름부으실 것을 기도하는 것과 함께 제시됐다.

왕이 왕관을 쓸 때 대주교는 시편 말씀인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89:14)를 봉독했다.

대관식이 끝난 후 참석자 전체는 시편 103편을 기초로 한 찬송 ‘내 영혼아 하늘의 왕을 찬양하라’(Praise, my soul, the King of Heaven)로 끝을 맺었다. 또 시편 21편의 시편가, 고대 기독교 기도인 테 데움(Te Deum)으로 찬양했다.

성경에서 왕은 단순히 인간 통치자만 지칭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왕은 하나님(출 15:18)과 다윗의 왕권을 가진 이상적인 왕인 메시아(렘 30:9) 곧 그리스도(계 11:15)를 뜻한다. 베드로전서는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메시아라는 말은 히브리어 ‘마쉬아흐’에서 나온 말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스’로 번역이 되었고, 영어로는 ‘크라이스트’(Christ), 우리 말로는 ‘그리스도’라고 번역됐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직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였다. 예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구약성경이 약속하고 대망했던 바로 그 메시아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 등 3중직을 가진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King of kings), 만주의 주(딤전 6:15)로 묘사한다.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는 ‘만왕의 왕’이라는 호칭을 쓸 정도로 절대 권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땅의 그 어떤 왕이나 황제보다 더 위엄있고 절대적인 최고의 권위자는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신앙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말로써 고백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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