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받지 못한 ‘워싱턴 선언’ 성과, 왜? [신율의 정치 읽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사실상 핵 공유’ 주장을 미국으로부터 대번에 반박당하고도 아전인수식 정신 승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민주당 대변인이 한 말이다.
‘워싱턴 선언’을 이런 식으로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 어떤 외교 정책을 평가할 때 스스로의 평가보다는 외교 관련 국가 반응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때가 있다. ‘워싱턴 선언’ 관련 북한의 김여정은 “핵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면서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워싱턴 선언’이 민주당 주장처럼 ‘정신 승리’ 차원의 실패작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 워싱턴 선언이 의례적 외교 선언이라면, 북한이 이토록 심한 단어를 쏟아내지는 않았을 테다. 2021년 한미 정상회담 관련 북한이 거의 무반응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번 워싱턴 선언은 북한에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줬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정상회담을 평가 절하한 것은 대통령실 스스로가 초래한 측면이 있다.
김 차장의 이런 발언에 대해, 정치학자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이어졌다.
먼저, 나토의 핵기획그룹과 유사한 협의기구 창설이라 했는데,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2016년 10월 우리나라와 미국은 ‘고위급 외교 국방 전략 협의체(EDSCG·Extended Deterrence Strategy and Consultation Group)’를 만들고 확장 억제에 대한 의견을 정기적으로 교환한다고 했다. 이 기구를 만들 당시에도 나토의 핵기획그룹을 참조했다고 정부는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이번 워싱턴 선언이, 최초의 나토식 핵기획그룹과 유사한 기구라는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또 ‘핵 협의’를 위한 기구보다는 나토에 존재하는 ‘핵기획그룹’을 기대했는데, 이 부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보기에 따라서는 핵 협의를 위한 기구와 핵기획그룹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획’과 ‘협의’는 뉘앙스상 차이가 있다. 유럽처럼 전술 핵무기가 배치돼 있지 않아 ‘기획’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핵 기획’ 기구 설치를 바랐던 학자들은 미국 전술 핵무기의 한국 배치를 기대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천명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항하는 의미로 우리나라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할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는 NPT 준수 명문화였다. 우리가 NPT에 가입돼 있는 이상, 이의 준수를 명문화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모호성’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의 명문화는 우리의 전략을 제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핵 정보 공유라는 성과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북한 전역을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는 오하이오급 핵 잠수함이 42년 만에 우리나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도 상당한 성과다.
단, 대통령실 단어 선택이 세밀하고 신중하지 못했음은 지적해야겠다. 김태효 차장이 ‘사실상 핵 공유’를 언급하자,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그냥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가 이 선언을 사실상의 핵 공유라고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4월 28일 “용어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논평했다.
문제는 ‘집착할 필요가 없는 용어’를 대통령실이 먼저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즉 자신들이 언급한 용어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논리적 부정합이 발생했다. 이런 논리상 문제는 국민의 대통령실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데 일조한다.
워싱턴 선언과 관련한 ‘용어 문제’가 외교적 성과를 부분적으로 덮는 모양새인데,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첫째, 대통령은 외교적 언어를 구사하는 데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외교에서 직설적 언어의 사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해당 논란을 보면 여당과 대통령실의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과 대통령실이 긴밀한 소통을 했더라면, 인터뷰 원문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번 방미 성과와 관련해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방미 전 국민적 기대감을 과도하게 높였기 때문에, 성과가 있더라도 국민은 미흡하다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핵 관련 안보 문제도 그렇지만 경제 부분도 과도한 기대를 갖게 만들어, 오히려 성과를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실은 반도체 관련 “미국(설계·장비)과 한국(제조) 양국이 서로 강점을 활용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분명 긍정적인 성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칩스법)에 따른 한국 기업의 불이익 우려를 해소할 만한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하기보다는 추상적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회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실무 접촉을 통해 미흡한 측면은 극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방미 전에 다양한 언급을 통해 기대치를 높여놨기 때문에 미흡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외교의 기본은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통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궁금증이 아니라 기대치만 높여놨다는 것은, 좀 더 세련된 외교력 구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대통령의 외국 방문 시점도 치밀한 계산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번 일본 방문 시기는 일본 지방선거 직전이어서 일본 정치권이 진보와 보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때였다. 이번 미국 방문 역시 바이든 대통령의 차기 대선 도전 선언과 겹치는 시기에 이뤄졌기 때문에, 미국이 국내 정치 상황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통령의 방미는 ‘가치 외교’ 측면에서, 그리고 ‘신블록화’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차원에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또한, 핵 관련 미국과의 공조가 보다 튼튼해졌다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가려지는 이유도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를 파악해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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