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있는 일"…65년만에 왕관 쓴 찰스3세 대관식 달랐던 풍경

이유정 2023. 5. 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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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가 6일(현지시간) 대관식을 마치고 황금색 마차에 올라 버킹엄궁으로 돌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신은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국민들, 다른 영연방 왕국과 영토를 각각의 법과 관습에 따라 통치할 것을 엄숙히 약속하고 맹세합니까?” (저스틴 웰비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

“나는 그렇게 할 것을 엄숙히 약속합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

영국의 찰스 3세(74)가 6일 오전(현지시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을 통해 공식 즉위했다. ‘최장수 왕세자’ 꼬리표를 달고 살던 그는 이날 비로소 영국의 “의심없는 왕(undoubted king)”으로 대내외에 선포됐다. 찰스 3세가 9살이던 1958년 왕세자로 책봉된지 65년 만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이후 즉시 왕위를 계승했지만, 이날 대관식을 거쳐 ‘찰스 3세 시대’의 공식적인 막을 열었다.

텔레그래프·BBC 등은 영국에선 70년 만에 이뤄진 '21세기 최초 대관식'을 집중 조명했다. 유럽의 입헌군주제 국가 가운데 이처럼 성대한 대관식을 여는 나라는 영국이 거의 유일하다.

대관식은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오전 10시 20분쯤 버킹엄 궁전을 출발하는 ‘왕의 행렬’로 시작했다. 찰스 3세 부부는 백마 6필이 이끄는 길이 5m, 무게 3t이 넘는 황금색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에 올랐고, 200여 육군 기마병들의 철통 경호 속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했다. 궂은 날씨였지만, 트라팔가 광장과 애드미럴티 아치를 지나는 2.1㎞의 행렬 구간에는 새로운 왕과 왕비를 직접 보기 위한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군중들은 영국을 상징하는 푸른색, 붉은색 옷을 입고 모여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흔들며 찰스 3세 부부를 향해 환호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윌리엄 왕세자가 6일(현지시간) 대관식에서 아버지 찰스 3세 국왕의 왼쪽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AFP=연합뉴스

예정보다 6분 일찍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한 찰스 3세는 마차 안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사원으로 입장했다. 의식을 시작하기 전 찰스 3세는 ”나는 주님의 이름과 그의 본보기를 따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왕립 채플 성가대 시동이 “폐하, 하느님 나라의 자녀로서 왕 중의 왕의 이름으로 귀하를 환영합니다”라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찰스 3세는 이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당신의 모든 자녀와 모든 믿음과 신앙에 축복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특별 기도문을 낭독했다.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의 국왕이 ‘모든 믿음과 신앙’을 대관식에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관식을 집전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성공회 최고위 성직자)는 찰스 3세에게 성유를 바르는 축성 의식에 이어 황금 홀(笏), 황금 보주(寶珠) 등 왕권을 상징하는 성물(레갈리아)을 건넸다. 이들 성물은 국왕이 왕좌에 앉을 때 양손에 든다.

웰비 대주교가 낮 12시 5분쯤 2.23㎏ 무게의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찰스 3세의 머리에 씌우는 것으로 대관식은 정점을 찍었다. 곧이어 커밀라 왕비도 왕관을 수여 받았다. 이어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찰스 3세의 장남인 윌리엄 왕세자가 찰스 3세의 왼쪽 뺨에 입을 맞추며 “생명과 온몸을 다하는 군주의 종”이라고 말하자, 참석자 전원은 기립해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라고 외쳤다.

찰스 3세 영국 국왕 일가를 보기 위해 6일(현지시간) 런던 버킹엄궁 앞에 인파가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왕의 보검' 여성이 처음 들어


예식을 마친 찰스 3세 부부는 왕관을 쓴 채로 다시 황금색 마차를 타고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버킹엄궁으로 돌아왔다.

이날 대관식에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시도하려는 영국 왕실의 노력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대관식은 1066년 ‘정복왕’ 윌리엄 1세 때부터 100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날 찰스 3세가 앉은 떡갈나무 왕좌 아래 700년 전 스코틀랜드 왕정을 상징하는 ‘운명의 돌’을 까는 것도 이 같은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동시에 이번 대관식에선 처음으로 여성 사제가 성경을 낭독하고, 불교·유대교·시크교도 지도자를 초청하는 등 다양성에 신경을 쓴 모습이 역력했다. 여당인 보수당의 하원 원내대표 페니 모돈트(50) 추밀원 의장은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관식에서 길이 1.21m 무게 3.6㎏짜리 보검을 흔들림 없이 들고 있는 모습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 보검을 여성이 든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선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는 8000여명이 초대됐지만, 이날 참석자는 2200여명으로 4분의 1로 간소화했다.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배경엔 대관식을 향한 영국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오전 왕의 행렬이 시작되기 전 반군주제 시위대 ‘리퍼블릭’ 회원 등 5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 회원 2000명은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찰스 3세 반대 시위를 할 예정이었으나, 왕의 행렬이 시작되기 전 경찰이 일찌감치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일부 관람객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하는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에게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대관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도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는 나의 왕이 아니다(#NotMyKing)”라고 적힌 노란 종이 플랜카드를 들고 소리치며 야유를 보냈다.

6일(현지시간)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이 "나의 왕이 아니다"는 문구의 피켓을 들고 '왕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해리 왕자, 발코니 인사엔 불참


왕실 가족의 ‘발코니 인사’는 대관식의 또다른 하이라이트로 꼽혔다. 버킹엄궁의 발코니는 역대 국왕들이 시민과 직접 대면해온 장소였다. 현대 입헌군주제 국가에선 종교보다 대중들의 승인이 더욱 중시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 영국 왕실 팬들은 대관식 며칠 전부터 이 장면을 앞줄에서 보기 위해 버킹엄궁 앞에서 텐트를 치고 ‘빗속 캠핑’을 감수했다. 대관식을 보기 위해 전역에서 몰려든 관광객 탓에 인근 호텔은 1박당 숙박비가 750파운드(약 125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날 대관식은 남부 본머스에서 북부 벨파스트까지 영국 전역의 57곳에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됐다.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는 이날 오후 2시 30분쯤 버킹엄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 만명의 인파가 환호하며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King)!”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 그들의 자녀인 조지 왕자, 샬럿 공주, 루이 왕자 등이 밝은 표정으로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찰스 3세의 형제·자매인 앤 공주와 에드워드 왕자, 이들의 배우자는 물론 커밀라 왕비의 손자들도 이 자리에 올랐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참석한 차남 해리 왕자(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왕실 일가와 불화를 빚은 차남 해리 왕자는 결국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2020년 왕실을 떠난 그는 대관식에서 공식 역할을 맡지 않았고, 군복 대신 정장 차림으로 참석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선 윌리엄 왕세자와 떨어져 세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부인 메건 마클과 자녀들은 대관식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앞서 해리 왕자 부부는 지난달 아버지의 대관식 참석을 발표하면서 “마클은 미 캘리포니아 자택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이 부부의 첫째 아들 아치(6)의 생일이어서 마클은 참석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리 왕자는 찰스 3세의 대관식 행사가 끝나기 전에 미국행 귀국길에 올랐다. 이날 대관식에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찰스 3세의 동생 앤드루 왕자도 참석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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