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회자 시국선언 참여한 이유... 정치구조 뿌리째 바꿔야 ['굴욕 외교' 반대 시국선언]

구교형 2023. 5. 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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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출범 1년, 시대정신 역행하는 정부... 양당 돌아가며 집권하는 구조부터 개혁하자

[구교형 기자]

 '윤석열 정부 1년에 부치는 기독교 목회자 1천인 시국선언‘이 4일 오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열렸다.
ⓒ 권우성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만에 목회자들은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담은 성명서를 지난 4일 발표했다. 나 또한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관련 기사: 윤 정부를 위해 기도했던 목사가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유 https://omn.kr/23sqn).

그 얘기를 하기 전 먼저 전제하고 싶은 게 있다. 나는 온 국민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모든 소원과 기대를 담아 대통령에게 투사했다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니 '속았다'며 물러나라는 식에는 반대한다. 우리는 5년마다 신을 뽑는 게 아니고, 대통령은 신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지난 코로나 2년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대한민국은 국가 기본시스템과 성숙한 국민 의식이 높아 웬만하면 대통령의 실정조차 흡수할 만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라가 가야 할 방향타만큼은 제대로 가리키든지 아니면 최소한 역행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그걸 '시대정신'이라고 하자). 2020년대 현 한국의 시대정신은, 30년 동안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신자유주의 독식으로 쌓인 병폐들을 극복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역행해 왔다고 본다. 다음 이유들이 내가 목회자 시국 선언에 참여한 배경이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대정신... 하지만

첫째, 기후 위기 극복의 역행이다. 한때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는 연출된 가짜뉴스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잇따른 가축과 가금류 전염병으로 인한 짐승 몰살, 심각한 미세먼지에 이어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이제는 위기극복 시나리오조차 너무 낙관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윤 정부는 전임 정부 시절 점차적 축소로 방향 잡았던 원자력 발전을 보란 듯이 다시 되돌렸다. 무분별한 막개발과 자연 파괴를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환경영향평가를 거침없이 건너뛰며 수익성도 불분명한 대규모 개발사업을 곳곳에서 승인해 주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다음 세대의 몫인 소중한 삶의 기반과 자산들을 탕진하려 들 것이다.

둘째, 국가폭력으로 전락한 법치의 역행이다.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법'과 '자유'를 목 놓아 외치는데, 도대체 무엇이 법이며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검찰을 내세워 법치를 내세우지만 강자의 구조적 폭력은 질서로 미화되고, 약자의 저항적 폭력은 탈법이라고 딱지 붙인다. 내로라하는 재벌총수들은 죄를 짓고도 경제 회생을 위해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여전히 OECD 최장기 노동시간에 시달리며 산재로 죽는 노동자가 끊이지 않는데도 '노조 기득권 척결'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부르짖는다.
 
 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2022년 10월 17일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거대기업 법인세는 깎아주고, 건축업자들이 무리하게 지어 미분양된 주택들은 나라가 대신 사주라는 여론도 일고 있는 마당에,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 보조금은 줄 수 없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한다. 강자와 기득권자를 위한 자유와 법치가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셋째, 평화를 외면한 대결과 냉전 시대로의 역행 탓이다. 서둘러 한일관계 회복에만 매달리는 것은 윤 대통령 개인이 친일 성향이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1945년 이후 미소 두 나라로 대변되는 냉전 질서가 1990년대에 무너진 이후에도 유독 한반도에서만은 왜 분단체제가 여전히 끝나지 않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 사망과 잇따른 북한 식량난과 긴긴 고난의 행군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동맹마저 사라져 버린 최악의 생존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 등 서방측은 굳이 분단체제를 해체하지 않아도 북한 스스로 무너질 것을 기대하며 현상유지, 고립, 압박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북한 정권은 생존 유지를 위한 마지막 보루로 핵과 미사일개발에 전념해 왔다.

평창올림픽으로부터 시작된 2018~2019년 남·북·미·중의 또 한 번의 평화 전환 시도가 있었으나, 이 시도가 멈추게 된 뒤 한반도는 다시 핵과 보복의 더 깊은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 사이 미국도 공화당 트럼프에서 민주당 바이든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났지만, 외교정책만은 계속해 중국 봉쇄-미국 중심주의다.
 
 지난 3월 16일,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 EPA=연합뉴스
 
중국이 터잡은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은 미국의 중국 봉쇄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다. 그동안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일본과의 역사문제로 일본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외교를 최선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대통령은커녕 정치인도 처음인 윤 대통령은 국내 실정을 만회할 카드로 항상 평균 이상의 외교점수를 얻을 수 있는 미국 추종으로 결심을 굳힌 모습이다. 그는 비굴하다는 국내 여론을 감수하며 일본 관계 개선을 시도, 미국보다 앞장서 한미일 동맹 체제를 굳히려 한다. 미국 대통령이 할 일을 한국 대통령이 대행해 주는 모양새다.

그럴수록 이에 대응해 북·중·러 동맹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북한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강하게 대립하는 신냉전 체제를 굳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제 한국은 남북 간 오발로 인한 전쟁뿐 아니라, 대만해협 분쟁이나 일본열도 문제 등 낯설고 위험한 영역에까지 거침없이 들어서고 있다. 더구나 북한·미국·중국·러시아 등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가운데, 겁 없이 핵 흥정까지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1년 만에 대통령 윤석열은 몰인정한 정치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판을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다만 성명을 보며 나는 한 가지 망설임이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윤석열이나 국민의힘 정부에 대한 인식적 혼란 때문이 아니다. 특정인에게 제왕적 권한을 주고 후회를 되풀이하는 지금 같은 정치체제를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대한민국 미래가 국민의힘 대신 민주당 집권에 있다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종교인들의 선언이, 민주당 스스로 깊이 참회하고 뼈를 깎는 각오로 개혁해야 할 필요를 미뤄도 될 메시지로 오도하지는 않을까 깊이 우려된다.

지금과 같은 정치구조가 지속된다면 최선, 차선이 아닌 최악의 후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는 민주당 실정으로 국민의힘이 '해 먹'고, 국민의힘의 파탄으로 민주당에게 정권을 안겨주는 양당 패권정치, 어부지리 회전문 집권을 대신할 새로운 정치개혁실험이 함께 따라야 한다. 다시 이런 상황을 맞고 싶지 않다면, 그와 같은 사람이 나오기 어려운 정치판을 새로 만들어야만 한다.

승자독식, 제왕적 권력 집중이 아니라 연합과 연립이 가능한 정치제도, 국민의 표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 또한 수도권 독식을 완화하고 지방 생존 기틀을 만드는 지방행정, 여성과 다음 세대의 참여를 확대하는 노력을 이제라도 시작하자. 막장 정치와 양당의 패권정치 극복은 동시에 시급하다. 만약 정치를 바꿀 골든타임이란 게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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