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이주민과 ‘동고동락’ 최 목사의 이유있는 변신
이주민과 동고동락한 사역 들여다보니 인권 운동가→ 공정무역운동 활동가
30년 가까이 이주노동자 사역을 한 최정의팔(76) 목사는 성경 인물 중 ‘구레네 시몬’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로마 병정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시몬처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주민 사역 등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창의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 2009년부터 사회적기업 ‘트립티’를 통해 이주민의 자립 사역을 한 것에 이어 최근 제주도에서 공정무역운동을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무역도시 ‘제주’를 꿈꾸다
지난해 ‘제주트립티’를 설립해 공정무역운동을 펼치는 최 목사를 최근 제주 정실동길 제주트립티 카페에서 만났다. 트립티 대표인 최 목사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트립티는 네팔 출신의 장애인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산스크리스트어로 ‘참 좋다’라는 뜻이다.
제주트립티 설립의 시작은 4년 전인 2019년이었다. 트립티가 제주의 한 호텔에 공정무역 물품을 납품하면서 최 목사는 제주가 공정무역도시로 선포되길 꿈꿨다. 최 목사는 “당시 제주도민들에게 ‘제주가 공정무역도시로 선포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는데 많은 이들이 이 비전에 공감하셨다”면서 “한 관광업계 전문가를 만나 이 비전을 나눴는데 도와주겠다며 여기에 따른 계획을 함께 세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호텔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자 공정무역 물품 납품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에 공정무역단체가 없는데 이 비전이 어떻게 이뤄질까 싶었어요. 단체가 있어야 관련 조례를 만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난해 제주트립티를 설립했어요.”
사역하려면 사무실이 필요했다. 지난해 초 제주의 한 사무실을 빌리려 했으나 임대료가 비싸 포기했다. 그러다 우연히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함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보증금이 문제였다.
“은행 대출은 안 되고 목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죠. 제주트립티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콘도처럼 분양해 1년 치 숙박을 선결제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선결제하는 대신 할인해주는 형식으로요. 불과 일주일 만에 153명이 선결제하면서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죠. 제주트립티는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선한 뜻이 있으면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제주트립티는 지난 1년간 제주에서 공정무역연구모임을 만들고 공정무역조례제정을 추진해왔다. 귤 판매를 통해 제주 농가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원두 등 제주산 공정 무역품을 만들어 해외에 본격적으로 수출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의 땅 200평(661.2㎡)을 지역 주민들이 빌려줘 사탕무 모종을 심었다. 제주트립티 카페에서는 공정무역 및 바리스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전방위 사역
이주노동자의 대부로 알려진 최 목사가 국내 이주민들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96년이었다. 청암교회 제3대 담임목사였던 그는 중국교포 8명이 우연히 청암교회에 피신한 일을 계기로 이주민 사역에 뛰어들었다. 2003년에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09년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동포들을 도와달라고 찾아와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사회적 기업 트리티를 설립했다. 최 목사의 아내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등을 역임한 한국염 목사다. 자신의 별칭이 ‘행복한 들풀’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주민과 함께했을 때 삶이 윤택하고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트립티는 서울 인천 등 6개 카페를 두고 있다. 최 목사는 “한국에서 만난 이주민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경제적 자립이 필요했고 결국 본국에서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제3세계 현지인의 경제적 자립과 선교 사역을 위한 도구로 네팔 베트남 태국 라오스 등에 트립티 지부를 세웠다. 최 목사는 “제3세계 청소년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에 오기 힘들다”며 “외국인이 3개월간 비자 없이 제주에 머물 수 있는 점을 활용해 제주트립티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제주트립티는 이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최 목사는 제주트립티 사역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주트립티를 통해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된다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죠. 수많은 제3세계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희망을 얻고 복음을 알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입니다.”
제주=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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