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보며 회 한점 '회(膾)크닉' 명소도…"술 한 방울도 안돼"

김민주 2023. 5. 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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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서 발디딜틈 없이 앉은 방문객들이 술과 음식을 먹고 있다. 사진 수영구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선 7월부터 술을 한 방울도 마실 수 없게 된다. 원래 이 공원은 ‘회(膾)크닉’(생선회+피크닉) 명소다. 광안대교 야경을 배경 삼아 공원 건너편 민락회타운에서 신선한 횟감을 1㎏당 2만원대 부담 없는 가격에 포장해와 먹을 수 있어서다. 광안리해수욕장도 지척이다.

민락수변공원은 과거엔 주로 중장년층이나 가족 단위 방문객이 즐겨 찾았다. 그러다 2016년쯤 SNS를 통해 ‘즉석 만남’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젊은 층도 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2020년에도 한해 30만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았다.


구(區) 전체 쓰레기발생량의 60% 차지


하지만 날이 선선해지면 2만884㎡ 넓이의 공원 안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 반복되곤 했다. 술병이 나뒹들고, 음식물·일반쓰레기 등이 넘쳐났다. 아예 깔고 앉았던 돗자리채 두고 가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실제 최근 5년간 7~8월마다 배출된 쓰레기 총량은 652t이나 된다. 같은 기간 수영구 전체 쓰레기 발생량의 60%에 가까운 수치다. 민락술병공원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결국 수영구는 금주 공원 지정이란 칼을 빼 들었다.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보단 술판으로 인한 도시 이미지 훼손이 더 심각하단 판단이다. 이에 7월부터 술을 먹다 적발되면 5만원의 과태료까지 부과키로 했다. 강성태 수영구청장은 “쓰레기 투기 등 무질서가 도를 넘었다”며 “음주 행위를 제한할 뿐 공원에 방문하거나 음식을 먹는 건 가능하다. 술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7월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 쓰레기가 투기돼있다. 성수기엔 매일 오전 3시부터 4, 5시간 동안쓰레기수거원이 공원을 치워야 한다. 사진 부산시

술 한 방울 허용 안 되는 공원들


전국 공원·광장 등 공공장소가 속속 ‘금주구역’으로 변하고 있다.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자치단체가 음주행위 금지구역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나아가 지정까지 할 수 있게 법이 바뀌면서다. 다만 서울 한강공원처럼 반대여론에 쉽게 결론 내지 못한 곳도 있다.

서울 중랑구는 지난달 면목역광장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침을 세웠다. 다음 달까지 주민 의견을 듣고 결정하게 된다. 2006년 조성된 면목역광장은 지역의 대표 문화복합공간이다. 하지만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차 야외 음주공간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도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음주에 따른 소음ㆍ소란 등 민원피해가 잇따르자 중랑구는 금주구역이란 강수를 뒀다.

강원 원주시는 이달 지역 내 도시공원과 어린이 놀이 시설 등 89곳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했다. 앞서 경남 김해시도 지난해 12월 142곳을 바꿔놨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특정 야외 공간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된 근거는 2020년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이다. 개정안엔 음주 폐해를 막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자치단체가 조례를 만들어 금주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 중랑구는 면목역광장에서 광장 금주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 설문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중랑구

당근 안 먹히자 강수 둬


대부분 지자체는 여러 당근책이 통하지 않자 금주구역 지정을 결정했다. 부산 수영구의 경우 쓰레기를 제대로 배출하는 방문객에게 ‘부산불꽃축제’ 관람 티켓을 증정하거나 자정이 되면 공원 전체 불을 끄는 ‘0시 소등’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수영구가 민락수변공원 인근 상인 등을 대상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했더니 64.7%가 금주구역 지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역시 동력이 됐다.

한강공원은 반대 여론…서울시 “조례 개정부터”


이용객이 많은 일부 야외 공간은 금주구역 지정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치맥’(치킨+맥주)으로 유명한 한강공원이 대표적이다. 한강공원은 2021년 한해 5763만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부터 기존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금주구역 지정 및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로 개정하는 절차를 밟아왔다. 음주 민원에 대응하고 어린이ㆍ청소년 방문이 많은 시설에선 음주 행위를 원천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이 돗자리를 펴고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뉴스1

조례가 개정되면 한강공원이 금주구역에 포함될 지 관심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금주 조처가 필요하단 여론이 제기된 적 있다. 실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 방역망을 피해 한강공원에서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음 편히 맥주 한잔하지도 못하냐’ 등 반대여론도 비등하다. 시민 설득이 관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공원을 포함해 아직 어떤 장소도 금주구역으로의 지정을 정식 검토한 적이 없다”며 “조례 개정 작업부터 마친 뒤 (특정 공원 등) 금주구역 지정이 필요하다면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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