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도 놓치는 전기차 고장잡는다" 제주 진단센터 가보니
"전기차 유지·보수 위한 통합 플랫폼 구축"
평가장비·데이터 활용해 진단기술 연마
차량 고장 예측 부품 재고관리 효율성 ↑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체 자동차 2500만여대 가운데 순수전기차는 40만대 정도로 아직 2%가 채 안 된다. 충전 인프라가 늘어난 데다 차량 자체의 상품성이 좋아지면서 보급 속도는 한층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아직 차량의 특성을 사용자는 물론 제작사도 오롯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은 100년 넘게 경험이 쌓이면서 사용과정에서 겪을 법한 크고 작은 문제가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반면 전기차는 아직 그렇지 않다. 자연스레 시장이 커지고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환경규제 등이 얽혀 정치적인 입김이 적잖이 작용하면서 시장이 성장한 영향이 크다.
지난 3일 찾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주본부 내 전기차진단기술센터는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무슨 고장이 났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여전히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전기차를 전문적으로 살펴보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2021년 운영을 시작했다. 홍영선 센터장은 "전기차 제작사에서도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특정한 의도나 목적을 갖고 수집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우리 센터는 진단·정비에 특화된 데이터를 뽑아내 이를 실제 기술로 활용하고 차량 정비 프로세스 전반을 개선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에 비해 줄었다고는 해도 전기차 역시 1만개 안팎의 부품이 들어가는 복잡한 기계다. 여기에 각종 전자장치와 소프트웨어가 뒤섞였다. 핵심부품으로 꼽히는 구동 배터리는 화학물질인 탓에 관리시스템으로 완벽히 통제하기 어렵다. 전기차 제작사가 아무리 살뜰히 살핀다 해도 실제 운행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기차진단기술센터에서는 2021년 2월부터 실시간 전기차 관제시스템을 구축, 지금껏 100대(누적)가 실제 도로를 다니며 차량 고장·정비와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모았다. 정상 차량과 고장 차량의 데이터를 비교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주요 부품마다 이상을 감지하는 식이다.
홍 센터장은 "실시간으로 사용자 관점에서 전기차 주행 과정에서 데이터를 모아 차량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한편 미리 고장을 예측하거나 정비수요가 있을 법한 부품을 준비할 수 있다"며 "과거 내연기관 차량을 주로 다뤘던 중소·중견 규모 정비업체가 전기차도 정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는 실시간 관제시스템과 함께 전기차 주행재현장비, 배터리 모듈·팩 성능평가 시스템 등 전기차와 배터리·모터 등 핵심부품 성능을 분석하는 장비 29종을 갖췄다. 이러한 장비를 활용해 차량이나 주요 전장품의 생애주기 특성이나 고장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 전기차 진단은 물론 고장예지·건전성 관리(PHM) 기술을 개발한다.
차량의 주행패턴 등을 감안해 미리 어떤 고장이 날지 예상하고 그에 맞춰 선제적으로 차량을 손보거나 고장 부위에 맞는 부품을 일선 정비업체가 미리 준비해둬 고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걸 돕는다는 얘기다.
강병수 전기차진단기술센터 선임연구원은 "배터리팩을 구성하는 모듈 하나만 노후화할 경우 밸런싱은 유지되나 주행거리가 절반가량으로 줄어들기도 했다"며 "차량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어떤 고장인지 인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일선 현장에서 정비 노하우를 익히는 일도 돕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유지보수와 관련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거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센터 측은 내다봤다. 고장 데이터베이스나 진단기술을 폭넓게 아우르는 전기차 유지보수 플랫폼이 자리 잡는다면 운전자나 완성차·부품·정비 업체는 물론 택시·렌터카 등 기업형 전기차 관리 서비스도 한층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홍 센터장은 "센터가 확보한 생애주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향후 수소차 주요 부품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등 미래차 산업구조로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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